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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매미 Jun 22. 2022

이 글을 쓸 용기

정은균 선생님의 '호모 스쿨 라이터스'를 읽고

나는 현재 질병 휴직 중이다. 질병명은 우울증과 공황장애.


그동안 혁신학교 업무와 연구 업무를 총괄하는 부장교사로서, 그리고 학교의 유일한 전교조 조합원으로서, 학교 민주주의가 망가지는 것을 어떻게든 막고 싶었다. 적어도 나의 업무와 관련해서만큼은 구성원의 의견을 무시한 채 관리자들의 뜻에 따라 학교가 운영되는 것을 막아 내고 싶었고, 교사 개개인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저해하는 과도한 지시와 간섭도 막아 내고 싶었으며, 단체협약을 우습게 여기는 관리자들의 태도를 용납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부지런히 선생님들의 의견을 수렴하기도 했고, 학교장의 의지에 반대되는 소신 발언도 용기 내어 여러 차례 했다.


학교에서 다른 선생님들에게 비춰진 나의 이미지는 아마도 매우 당차고 용감하고 유쾌하며 씩씩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당차고 용감하고 유쾌하며 씩씩한 사람인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 이면의 연약함 역시도 나의 진실이다. 학교장과 대립각을 세우는 일이 거듭되고 내가 아무리 노력해 봐도 민주적 학교문화가 계속 박살나는 것을 체험하면서 (현재의 학교장이 부임하기 전까지 우리 학교는 정말 아름답고 소중한 민주적 문화를 지니고 있었는데 이토록 쉽게 부서져 버리다니!) 나의 불안과 공황은 점점 심해졌고 전에는 없었던 우울증도 심해졌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학교장과 면담 중 나의 힘겨움이 한계치에 도달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그렇게 나는 갑작스럽게 학교를 쉬게 되었다. 내게 OO중학교, 그리고 그곳의 학생들, 동료들은 상처다. 학교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나대다가 결국 혼자만 다쳐서 튕겨 나왔다는 패배감도 크다.


그런 내가 정은균 선생님의 새 책 ‘호모 스쿨 라이터스’를 읽기 시작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학교 글쓰기의 민주주의’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분명 학교와 글쓰기 그리고 학교 민주주의에 대한 책일 터, 나의 마음이 이 독서를 버텨 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일단 읽기 시작하자 ‘아,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구나!’라는 공감으로 위로를 많이 받았다.


이 책은 ‘학교와 교사로 하여금 교육을 끝까지 가슴에 안게 하는 중요한 방책 중 하나’요 ‘학교 민주주의에 이르는 길’로서의 글쓰기에 대해 다루고 있다. 나는 감히 이 책의 전체를 아우르는 균형 잡히고 완성도 높은 서평을 쓰지는 못할 것 같다. 다만 내게 몹시 아프게, 아니 아플 정도로 시원하게 와 닿은 내용들을 언급해 보고자 한다. 이는 주로 학교 민주주의와 교사의 자기표현에 관련된 부분들이다.


어느 징계 위원이 말한 한마디가 아직 귓가에 쟁쟁하다. 그것은 우리가 교무실에서 오랫동안 들어 왔고, 앞으로도 자주 들었으며, 어쩌면 영원히 듣게 될 한마디, “그건 정 선생님 생각입니다”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들이 내 언어를 의미 없는 독백이나 소음이나 투정처럼 받아들이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존재가 근원적으로 부정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140쪽)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내가 그토록 상처받은 이유를 발견했다. ‘'나'라는 존재가 근원적으로 부정당하는 것 같은 느낌.’ 학교장도 실소(失笑)하며 내게 말했었지. “그건 박 선생님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이고…” 그런데 그렇다면 누구의 의견은 ‘개인적’이지 않고 ‘주관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그때 이런 대답을 했어야 한다.


“맞습니다. 저는 제 개인 의견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 자기 생각을 말합니다. 무엇이 문제죠?” (115쪽)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은 사족 표현이다. (중략) 아주 이상적인, 개인적이지 않으며 공평무사한 의견이 따로 있다는 듯. 그러나 그런 것은 없다. (116쪽)


물론 자기 의견을 명확히 밝히는 존재를 관료 시스템은 몹시 불편해한다.


교사가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은 근거 없는 피해망상이나 환상이 아니다. 학교는 관료 시스템이 지배하는 행정 파이프라인의 말단 하수구 같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공간이다. (중략) 우리는 교무실이나 교실에서 ‘나’의 공포와 두려움을 정면으로 응시하는가.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것을 인정하는가. (135~136쪽)


너무도 적확한 표현이기에 반복하자면 ‘관료 시스템이 지배하는 행정 파이프라인의 말단 하수구 같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공간’인 학교에서 ‘나’의 의견을 명확히 표현하고 소신껏 행동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두렵기 때문이다. 교장, 교감과 관계가 불편해질까 두렵고, 어떤 방식으로든 불이익을 받을까 두렵고, 나중에 감사에서 걸릴까 두렵고, 혹시라도 학부모 민원이 제기될까 두렵고, 두렵고 두렵고 두렵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소신껏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기 힘든 것은 이처럼 구조의 문제이다. 그런데 이 구조를 바꾸려면 교사들이 소신껏 자신의 의견을 표현해야만 한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불만은 있지만 나서서 자기 의견을 표현하지는 않을 때 억압적 구조는 공고히 유지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겪은 그 모든 국면에서도 다른 사람들은 회의 시간에 ‘자신의’ 의견을 잘 말하지 않았다. 교무실에서 함께 나누는 사담에서는 다들 분명 자신의 의견이 있었지만, 회의 시간에는 나만 나의 의견을 말하곤 했다. 나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의견을 공적으로 표현하지 않을 때 그 공동체의 민주주의가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저자인 정은균 선생님은 이 대목에서 ‘나’를 이야기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힘은 집단으로서의 추성적인 인민들peoples이 아니라 수많은 ‘한 사람’, 개인individual에게서 나온다’는 점에서 ‘'나'에서 시작해 '우리'로 향하는 글쓰기’를 강조한다.


‘나’를 드러내는 말하기와 글쓰기는 내가 믿고 의지하는 세계관이나 정치적 신념을 밝히는 일이다. 그때 내 가슴속에는 공포가 자리잡는다. (147쪽)


‘나’를 이야기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역설적이지만, ‘나’를 말하고 쓰는 것은 ‘신원 확인’이 주는 부담감이나 세상에 내던져지는 데서 느끼는 공포심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한다. ‘나’ 이야기는 ‘우리’로 가는 징검다리가 된다. (중략) 글을 사이에 두고 ‘나’와 ‘너’가 만나 ‘우리’가 된다. 홀로 떨어진 ‘나’는 불안하지만 ‘우리’ 속의 ‘나’는 평안하다. 그런 ‘우리’가 세상을 만들고 바꾼다. (150쪽)


글을 쓴다는 것은 세계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나’의 이야기를 ‘나’의 목소리로 전함으로써 책임감을 갖고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 독자인 ‘나’는 ‘나’의 의견이 ‘나’의 의견임을 분명히 밝히는 또 다른 ‘나’의 문장을 읽으며 그와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시간을 경험한다. ‘나’ 글쓰기는 평범한 사람들이 각자의 목소리로 자기 생각과 경험을 말함으로써 세계에 참여하고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 손쉬운 방법이다. (112~113쪽)


저자는 교사가 1인 연구자로서 공부와 책 읽기와 글쓰기를 통한 자기성찰로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더는 성장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는 교사는 자기 자신에게뿐 아니라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해롭다. (267~268쪽)


그리고 ‘교사가 교육에 관해 많은(가능하다면 모든) 것을 알려고 노력’하고, ‘교육의 말단이나 지엽이 아니라 전체와 본질을 보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교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목소리로 학생과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는 ‘불복종의 글쓰기’를 실천할 것을 제안한다. 또한 글쓰기는 공적인 행위임을 강조한다.


불복종의 글쓰기는 ‘나’의 내부에서 출발하고 그곳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외부와 세계를 지향한다. 그것은 책임을 지는 글쓰기, 진실로 공공을 생각하는 글쓰기다. (232쪽)


글쓰기는 세계 안에서 세계와 함께 하는 공동의 일이다. 이 책에서 가장 힘주어 말하고 싶었던 문장이다. (276쪽)


고백하건대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나는 내년에 복직을 할지 퇴직을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어쩌면 학교라는 세계는 더 이상 내가 속한 곳이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은 보람이 크다. 그 보람이란, 글쓰기가 공적인 행위임을, 내가 앞으로 학교 안에서 살아가든 학교 밖에서 살아가든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글쓰기가 이 세계와 함께 하는 공공의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점, 그걸 깨달으면서 왠지 마음이 단단해졌다는 점,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쓸 용기도 내게 되었다는 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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