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너머
* <공동선> 제175호 ‘두려움 너머’ 꼭지에 게재된 글입니다.
벨빌에서 / 박현경(화가, 교사)
1.
오늘은 파리에 도착한 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다. 일주일 내내 나는 벨빌(Belleville)에 있었다. 이곳에 숙소를 정한 것은 이 동네에서 나의 전시를 하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꼭 전시 때문에 온 것이 아니었더라도 나는 틀림없이 벨빌에 묵었을 것이다. 3주의 체류 기간 중 필요에 의해 다른 동네에 갈 일이 몇 번 있긴 하지만, 3주 내내 오직 벨빌에만 있는다 해도 전혀 섭섭하거나 답답하지 않을 것 같다. 그만큼 여기는 재미있는 곳이다. 이번뿐만 아니라도 앞으로도 파리에 오면 벨빌에 묵을 것이다.
벨빌은 파리 20구에 위치한 동네로, 파리에서 이민자가 가장 많이 사는 곳 중 하나다. 사람들이 걸친 옷의 가격이 가장 저렴해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남편과 나는 지난 2019년 프랑스 여행을 왔을 때 친구 까롤린을 만나러 처음 벨빌에 들렀다가 이곳의 생동감 넘치고 역동적인 분위기에 반해, 이후 파리에 올 때마다 벨빌에 묵는다.
이민자들 중에서도 무슬림이 많다는 이유로, 흑인이 많다는 이유로, 또 중국인이 많다는 이유로, 이곳은 한국 여행객들에게 아주 위험한 동네로 평가되는 듯하다. 그리고 종종 프랑스 현지인들에게는 낙후되고 불쾌한 동네로 평가되는 듯하다. 파리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 중에도 나를 만나느라 벨빌에 처음 와 봤다는 분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랑 남편이 지금까지 겪어 본 바에 의하면 이곳은 진짜 사람 냄새 나는, 말 그대로 ‘사람 사는’ 동네다. 벨빌의 카페에서, 케밥집에서, 튀니지 음식점에서, 레바논 음식점에서, 중국 음식점에서, 술집에서, 빵집에서, 시장에서, 슈퍼에서, 숙소 엘리베이터에서, 먹고 마시고 친구를 만나고 물건을 사고 집에 드나드는 동안 마주쳐 인사를 나누는 동네 사람들은 참으로 다정하고 친근하다.
왁자지껄한 시장에서는 상인들이 웃음 가득한 얼굴로 다짜고짜 “니하오!”, “곤니찌와!” 하고 말을 건네곤 한다. 받아들이기에 따라 이를 인종 차별을 한다거나 동양인을 우습게 본다거나 하는 것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게 다만 호의와 호기심과 친근감의 표시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더 크게 웃으며 인사를 나눈다. 웃음과 인사가 넘쳐나는 시장 구경은 늘 재밌다.
우리 숙소 앞에는 북아프리카계 주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있다. 이름하여 ‘자유로운 사람들의 식당’. 작년에 남편과 내가 처음 그곳에 가서 저녁식사로 위스키와 함께 ‘꾸스꾸스’를 주문했을 때 주인아저씨는 신기해하고 반가워하는 표정으로 주문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가 그 양 많은 꾸스꾸스를 깨끗이 다 비웠을 때, 그는 더욱 기뻐하면서 위스키 한 잔을 더 공짜로 주셨다. 이 환대에 우린 가슴 뿌듯해하며 숙소로 돌아왔었고 지금은 이 식당의 단골이다. 어제 한 튀니지 음식점에서 튀니지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어치웠을 때도 우린 비슷한 환대를 경험했다.
조심스레 생각건대, 이분들에게는 그동안 백인들로부터, 혹은 말끔하게 차려 입은 반듯한 사람들로부터 받아 온 경계와 멸시의 경험이 있기에, 우리 같은 이방인이 마음을 활짝 열고 다가갔을 때 더욱 감동하며 환대해 주시는 게 아닐까 싶다. 이 동네분들의 감동과 환대는 나의 마음을 환한 햇빛으로 채워 준다.
2.
벨빌에 있으면서 나는 자주, 내가 지금까지 살았던 동네들을 떠올린다. 예를 들어 청주시 봉명동. 그곳에는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등 러시아어권 이민자들이 매우 많이 살고 있다. 그래서 러시아 빵집도 있고 러시아 음식점도 있고 거리에 러시아어 간판이 아주 많다. 그런데 내 지인들 중 몇몇 분이 ‘봉명동은 러시아 사람이 많아서 무섭고 위험하다‘, ’봉명동은 외국인이 많아서 살 곳이 못 된다’와 같은 얘기를 해서 속으로 몹시 섭섭했던 적이 있다.
나랑 남편이 살던 봉명동의 빌라 위층에는 정확히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러시아어를 쓰는 가족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빌라 바로 맞은편 건물에는 베트남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출퇴근 시간에 마주치는, 러시아어를 쓰는 가족은 친절하고 정중했다. 맞은편 건물의 베트남 사람들은 일요일이면 모여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놀곤 해 남편과 나도 덩달아 흥겨웠다. 우리의 외국인 이웃들은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들이었다.
성급하게 일반화해선 안 되겠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로는, 봉명동에 사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내가 위험을 느낀 적이 몇 번 있는데 그건 모두 골목길이나 편의점에서 마주친 한국인 술꾼 아저씨들 때문이었다. 외국인 때문에 위험을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남편과 나는 2021년부터 2022년 중반까지 1년 반가량 음성군 삼성면에 살았다. 그리고 2023년 5월부터 나는 음성군 금왕읍에서 지내고 있다. 삼성면에나 금왕읍에나 외국인이 참 많다. 길을 걷다 보면 한국인보다 외국인을 훨씬 더 많이 마주칠 정도이다. 중앙아시아에서 온 분들, 러시아에서 온 분들, 동남아시아에서 온 분들, 중국에서 온 분들 등등. 마치 전 세계가 함께하는 듯한 이 다양성 넘치고 활기찬 지역이 나는 정말 좋다. 다만, 이 지역에서도 ‘그 동네는 외국인 많아서 위험해.’ 같은 말을 들을 때면 마치 내가 혹은 내 남편이 예비 범죄자 취급을 받은 것처럼 억울하고 서운한 마음이 든다.
3.
AAB(Ateliers des Artistes de Belleville)는 1989년 벨빌의 예술가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당시 철거 위기에 있었던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을 지키기 위해 벨빌의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협회이며 오늘날 250여 명의 예술가들이 함께하고 있다. 나는 2022년 4월 잠깐 파리를 방문했을 때 벨빌을 산책하다가 AAB에서 운영하는 갤러리에 들르게 되었다. 동네와 장소가 너무 맘에 들어 이후 2023년 2월 이곳에서 개인전을 했고, 지금은 네 명의 파리 작가들과 함께 5인전을 하고 있다. 다른 곳이 아닌 바로 벨빌에서, 그리고 AAB 갤러리에서 벌써 두 번째 전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흡족하고 감사하고 자랑스럽다.
4.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는 그의 책에서 자신이 처음 벨빌에 갔을 때를 회상하며 ‘마치 국경을 넘어온 것 같았다’는 표현을 했다.
남편과 내가 묵고 있는 숙소 근처 골목 담벼락에는 누군가 이런 문장을 써 붙여 놓았다.
“우리는 모두 이민자의 자손들이다.”
5.
열네 시간 동안 비행하여 국경을 넘어 왔다. 그리고 여기서 나의 이웃을 만난다.
앞으로도 내가 넘을 수많은 경계들을, 그리고 그 경계들을 넘어 만날 내 이웃들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