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소식 좋은 소식
인간이 지니고 있는 유전인자가 2만 개가 넘는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많은 단일 유전병이 발생할 수 있는지 상상해 볼 수 있다. Genetic counsellor로 일을 하다 보면, 처음 접하게 되는 유전병에 대해 공부해야 하는 상황은 아주 흔하다. 환자나 보호자에게 유전자 검사 결과와 진단명에 대해 설명하고, 적응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주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의무 중 하나인데, 처음 보는 유전병일 경우에는 몇 시간씩
관련 논문을 봐야 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그 병의
전문가는 될 수 없기에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참 많다.
반대로 희귀 유전질환이라고 하더라도 다소 발생률이
높은 질병들도 있는데, 유전성 감각신경성 난청 (sensorineural hearing loss)이 그중 하나이다. 보통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환자로 많이 보게 되는데 유전성 질환이 의심되면 난청과 관련된 유전인자들을 동시에 검사하는 multigene panel 형태의 유전자 검사를 진행하게 된다. 300개 미만 유전인자가 포함되어 있고 증후군성 난청과 비증후군성 난청 유전인자가 모두검사 된다. 환자나 보호자가 검사에 동의를 하고 피검사가 이루어진 후 보통 2개월 안에 검사 결과가 나오게 된다.
내가 지금 전달하려는 검사 결과가 좋은 소식인지 나쁜 소식인지는 환자와 보호자의 입장에 달려있다. 이미 난청의 원인을 밝혀내 어떻게 유전이 되는 병인지, 난청이 진행되는 속도를 알 수 있는지, 등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원했던 가족들에게는 음성 (negative) 결과가 허무하고 실망스럽게 느껴진다. 반대로 유전병이 아니길 바라는 가족들은 같은 결과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다. 유전자 검사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음성이라도 유전병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재할 수 없다는 말을 꼭 덛 붙이지만, 그래도 이런 가족들은 일단 음성 결과를 기쁘게 받아들인다.
나쁜 소식이든 좋은 소식이든, 검사 결과를 전달하는 것에 한참 익숙해진 커리어 7년 차에, 참으로도 어려운 소식을 전달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6살 난 난청 환자. 그동안 봐 왔던 환자들과 별 다를 바 없이 난청 외에는 다른 질환이 없었고, 9살 난 누나에게도 난청 이 있지만 그 외에는 가족력이 없어, 열성유전(autosomal recessive) 비증후군성 난청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검사 결과를 받고 나는, 선뜻 가족들에게 전화를 할 수 없었다. 6살 환자는 유전자 검사상 Usher syndrome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보통난청은 선천적으로 발병하고, 망막 색소 변성증 (retinitis pigmentosa)이라는 시각장애가 청소년기나 성인초기에 나타나는 증후군이다. 나는 이 환자의 부모에게, “당신의 아이는 몇 년이 지나면 눈도 잘 안 보이게 될 거예요 “라고, 마치 저주 같은 말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고, 그 환자의 부모들은 의외로 담대하게 검사 결과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 전화통화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전화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후에, 울고 아파하며 자신들의 꿈꾸고 기대했던 아이들의 미래가 산산조각이 난 것을 애도할 것이다. 나는 그들의 애도 과정의 시작이지만 아주 미미한 부분을 차지할 뿐이다.
난청이 있는 9살 딸도 같은 증후군이 의심되어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고, 예상대로 Usher syndrome 진단이 내려졌다.
아이들에게 언제, 어떻게 진단에 대해서 설명하면 좋을지 현실적인 조언과, 안과질환은 유전자치료 연구가 굉장히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상황을 바꿀 수는 없지만, 스스로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길 때까지 지탱할 수 있는 목발을 쥐어 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기도 하다.
몇 달 후에 환자의 아버지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유전자치료 임상실험에 대해 적극적으로 리써치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전문적인 언어들을 이해하기 어려워 도움을 요청한 것이었는데, 나는 이 아버지가 굉장히 건강한 방식으로 아이들의 진단에 적응하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 가족들을 가끔 생각한다.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을 내 전화 너머로 그들이 살아 나가야 했을 매일매일을 자주 상상 해 보았다. 아이들은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미래를 어찌 받아 드렸을까. 그리고 폭풍 같았을 몇 달 혹은 몇 년이 지나, 이제는 조금 잔잔해졌을 그들의 일상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