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기억

이상한 나라의 우리엄마

by 해밀

엄마가 죽었다.


나는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전화로 막내동생에게서 엄마가 눈을 뜬 채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다. 눈을 감겨 드리려고 해도 눈꺼풀이 쉽게 닫히지 않는다고 했다.

“마지막 순간에 내가 곁에 없어서 엄마가 서운했으면 어떡하지? 아니, 보통 눈을 못 감고 죽으면 억울한 거 라는데….”


마지막 엄마의 모습을 보고 싶어 막내동생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초점 없는 갈색 눈동자. 움푹 파이고 주름진, 거뭇거뭇한 눈가. 떡 벌어진 핏기 없는 입술 사이로 보이는 삐죽삐죽한 누런 아랫니. 피골이 상접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걸까. 산송장? 아니, 엄마는 이미 죽었으니 맞지 않는 표현이네. 슬픈 표정인지, 괴로운 표정인지, 아니면 이 생에 남은 미련이 하나도 없다는 표정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엉엉 울며 짐을 쌌다. 엄마를 호스피스에 입원시키고 일주일 뒤, 딸의 학교 입학을 위해 잠시 캐나다로 돌아왔고, 주말에 다시 한국으로 갈 예정이었다.


엄마가 나를 하루만 더 기다려 줬어도, 내가 따뜻한 손을 한 번 더 어루만져 볼 수 있었을 텐데.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자식 얼굴 한 번 보려고 버티다가 마지막 숨을 거두잖아. 현실은 전혀 달랐다.


대성통곡하며 우는 나를 보고 놀란 딸아이가 다가와 왜 우냐고 물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어서 너무 슬퍼.”

딸은 너무도 순진한 얼굴로 말했다.

“엄마, 괜찮아. 우리가 나중에 천사나라 가면 다시 만날 수 있어.”

그 말에 나는 조금 놀랐다.


한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막내동생은 장례식이 바로 시작된다는 사실에 당황하며, 식이 끝나기 전에 내가 도착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엄마가 이미 돌아가셨는데, 장례식이 다 무슨 소용일까. 엄마는 이제 없는데.”


나와 엄마를 평생 고달프게 한 아빠, 그리고 아빠의 가족들을 또다시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고 기운이 빠졌다. 그냥 캐나다에 남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쓰러져 있고 싶었다. 하지만 한국말도 서툰 막내동생이 혼자 고군분투하고 있을 생각을 하면 그럴 수도 없었다.


원래는 나 혼자 갈 계획이었지만 급히 남편과 딸의 티켓까지 예매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인천공항에 내려 리무진 버스를 타고, 엄마 아빠가 살던 서울 집에 도착했을 때는 밤 9시였다. 이미 장례식 이틀째였다. 장례식장에서 나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있다는 걸 알았기에 마음은 몹시 분주했지만, 몸은 물을 잔뜩 머금은 빨래처럼 무거웠다. 땀을 뻘뻘 흘리며 짐을 풀고 어두운 색 옷으로 갈아입었다.


같은 층에 사는 막내고모는, 항상 그랬듯 제집인 양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왔다. 방문을 빼꼼 열고 나를 보며 말했다.

“너희 엄마, 편히 잘 갔어.”


기가 막혔다. 화를 꾹 누르며 말했다.

“고모, 저 지금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요.”

“진짜야. 너도 가서 엄마 얼굴 보면 알 거야. 아주 평온한 얼굴로 갔어.”


그 순간,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피가 끓어오르는 감각을 느꼈다. 그리고 처음으로 고모에게 언성을 높였다.

“우리 엄마가 이 집에 와서 얼마나 억울하게 살았는데, 어떻게 편히 갔다는 말을 할 수가 있어? 엄마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너네 엄마가 무슨 억울한 인생을 살았다고 그래? 내가 너네 엄마한테 어떻게 했는데!”


고모는 악을 쓰며 자신이 얼마나 관대하고 정 많은 시누이였는지를 늘어놓았다. 며느리로서 효를 다하지 못한 고약한 우리 엄마, 시댁 재산을 축내고도 고마운 줄 모르는 파렴치한 우리 가족 이야기로 이어졌다.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 요약할 수 있겠지만, 그 순간의 고모는 그저 흥분해 날뛰는 술 취한 살쾡이 같았다. 맥락도 논리도 없이 떠오르는 대로 우리 가족, 정확히는 나와 엄마, 를 비난했고, 내가 엄마에게 쇠뇌(?) 당했다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저급한 말까지 내뱉었다.


나 역시 지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그들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사람들인지 외쳤다. 고모는 억울했는지 끝내 자기 딸을 불러내 나에게 한마디 하라고 종용했다. 하지만 그 딸은 현관에서 말했다.


“상대할 가치 없어. 집에 가자.”


“@@ 언니도 (내 둘째 동생)그랬잖아.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

그 말을 들은 남편이 조용히 말했다.

“저까지 끼어들어 큰 싸움 나게 하고 싶지 않으니 돌아가세요.”

그러자 고모 딸은 “이 사람도 똑같은 사람이야. 돈 받을 거 다 받고 나면 가겠지”라는, 영문 모를 말을 남기고 둘은 마침내 퇴장했다.


몸은 덜덜 떨렸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알 수 없는 통쾌함이 밀려왔다. 결혼과 동시에 시작된 엄마의 이상한 나라, 시댁. 상식적으로, 보통의 인생을 살아온 엄마에게 그곳은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목소리라도 한번 내려 하면, 친할머니와 세 고모는 엄마를 죄인처럼 몰아세웠다. 그 안에서 아빠는 단 한 번도 엄마의 편이 아니었다.


이제 엄마는 세상에 없다. 딸을 그 모양으로 키웠냐며 비난받을 일도 없다. 죽음으로 얻은 엄마의 자유. 엄마를 위해 무언가를 한 것 같아 뿌듯했다. 평생 억눌러 두었던내 감정의 유리병에, 마침내 김이 빠져나갈 작은 구멍 하나가 뚫린 것 같았다.


그때는, 정말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트라우마와 grief 끈적한 감정들이 그렇게 쉽게 녹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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