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인간의 완벽한 조화를 보여주다
티켓을 구매하려고 건물 입구 쪽으로 가서 보니 판매하는 곳이 없고 무언가 팻말이 붙여져 있다. 온라인으로 하라고 안내되어 있고 큐알 코드만 덩그러니 있다. 그 큐알코드를 통해 들어가니 테시마 아트 뮤지엄 홈페이지가 나온다. 그렇다면 즉석에서 예매하지 뭐 하며 나는 티켓팅을 시작했다. 그런데 순조롭게 되지를 않는다. 한번 해보고 안되고 또 한 번 시도해서 인적사항 모두 지게 카드번호며 기한 다 지재하고 들어갔으나 결제하는 방식에서 계속 오류가 난다.
나는 여행을 한 달씩 하기 때문에 주로 출발하는 날 나의 한국 전화나 인터넷은 한 달간 정지를 시키곤 한다. 카톡이 있기 때문에 그다지 불편한 점이 없다. 그리곤 그 나라의 유심을 사서 끼워 지내다 가곤 했다. 그런데 전화번호가 없는 상태라 내가 나를 인증하지 못하는 상황이 자꾸 벌어지고 그런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할까 싶어 하면 또 어느 지점에서 막히곤 진행이 되지 않기를 반복했다. 슬슬 짜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오전 내내 행복했던 시간에 대해 어디 한번 당해봐라는 것처럼 가열하게 나를 엿먹이는 결제시스템.
시간은 자꾸만 흘러간다. 이러다 뮤지엄을 못 보게 되면 이번 섬여행의 하이라이트, 알짜배기가 빠진 주객전도의 여행이 될 수 도 있는 것 아닐까 싶었다. 결국 집에 연락해 둘째 딸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삼십 분이나 되는 귀한 시간을 허비하고 둘째가 예매해 준 나의 관람시간까지는 또 앞으로도 삼십 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그 사이를 이용해서 영상 촬영이나 하자 싶어 잔디밭으로 갔다.
뮤지엄 측에서 가져다 놓은 테이블과 앉은뱅이 의자들이 군데군데 놓여있었다. 그중 비어 있는 곳을 보니 그 옆에 한쌍의 남녀가 둘이 손을 꼭 잡고 누워 있다. 깊이 잠든 것일까 아무런 미동도 없다. 그 옆에서 노래하는 게 괜찮을까 싶은 마음이 잠시 일었으나 어쩌면 나의 달콤한 노래가 저들의 애정전선을 더 달달구리하게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가서 보니 아까 버스를 못 탄 그 남녀다. 오늘은 어차피 같은 배를 타고 같은 섬으로 여행을 온 여행동기들이니 낯이 익은 사람들이 많다. 그들도 그들의 인상에 나는 강력히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우쿠렐레를 에코백에 넣고 하늘 하는 원피스 입고 챙 넓은 밀짚모자 쓴 여자. 그 어딜 가나 눈에 띌만한 사람이다. 이렇게 기막힌 뷰에서 영상은 무조건 찍어야 한다.
누워 자는 이들을 위한 나 나름의 최대한의 배려로 달콤한 사랑 노래를 세곡정도 불렀다. 그리고는 시계를 보니 나의 입장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얼른 정리를 하면서 일어나려는데 두 손 꼭 잡고 누워있던 두 남녀가 박수를 쳐준다. 내가 땡큐 하면서도 왠지 방해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싶어 미안하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니다고 진짜 베리 나이스였다고 남자가 말한다. 한결 더 즐거운 마음으로 고맙다 하고 일어섰다. 이 베리나이스라는 말이 은근 기분 좋은 말이다라고 생각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어렵게 구한 티켓을 당당히 보여줬다. 뮤지엄 입구를 찾는데 없다. 그래서 입구가 어디냐 했더니 밖으로 나가라고 한다. 아! 순간 깨달음이 온다. 좀 전에 어떤 남자 직원이 사람들을 세워두고 간단히 설명을 해줬었다. 그때 밖에 있는 길을 따라가라는 말이 생각이 났다. 밖으로 나가서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었구나 하며 거참 신기하고 신선한 뮤지엄이라고 생각했다.
야외에 길게 펼쳐진 길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돌 듯 쭉 돌아서 간다. 기막힌 자연의 풍경을 가장 먼저 만나게 하는 이 방식, 신선하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 드디어 커다란 하얀색의 돔 같은 건물이 보인다. 그것이 바로 테시마 아트 뮤지엄이다. 여기도 역시 안내직원이 서있다. 몇 사람을 모아 두고 관람 시 주의 사항을 알려준다. “소리 내지 말기, 말하지 말기, 사진 촬영 안되고 바닥에 있는 물이나 구슬에 손대지 말기” 같은 주의사항을 언어로도 문자자료로도 단단히 알려준다.
그리고는 신발을 벗으란다. 그쯤에 이르자 ‘거 참 별시럽다 이 미술관. 그래 그렇다면 어지간히 나를 감동시키지 않으면 안 될 거야. 이렇게 기대감이 커진 걸 감당할 자신이 있는 거야?’라며 속으론 투덜거리면서도 신발은 곧장 벗었다. 말 잘 듣는다. 맨 발로 조금 걸어 동굴 입구처럼 생긴 미술관 입구에 들어섰다. 세상에나! 나의 입이 쩍! 벌어지며 "대박"이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말하지 말랬는데! 둥근 천장에 커다란 구멍이 두 개 뚫려있고 구멍에는 기다란 투명 끈이 길게 늘어져 양쪽으로 붙어있다. 바닥에는 물이 여기저기서 흐르거나 멈춰 있거나 한다. 크고 작은 구슬들이 바닥에 있다. 사람들도 군데군데 있다. 서 있는 사람, 누워 있는 사람, 앉아 있는 사람, 기어 다디는 애들, 자는 사람 등 다양하다.
뚫린 구멍으로 자연이 들어온다. 파란색, 초록색, 갈색, 노란색등. 나의 움직임에 따라 그 자연의 모습은 변화되어 보인다. 빛의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 구멍이 만든 원이 다양한 형상을 만들어낸다. 물에 비친 빛의 그림이 시시각각 달라지고 바람에 따라 투명끈이 시시각각 다른 춤을 추고 있다. 사람이 계속 변화하며 또 다른 볼거리와 그림을 만들어 내고 있다. 여기에서는 사람도 중요한 예술 매개체다.
가장 재밌는 건 사람의 움직임이다. 질주하듯 앞만 보고 내딛던 발걸음이 바닥의 물을 갑자기 만나면서 느림의 시간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 사람들은 슬로 뮤비 속 배우들처럼 움직임이 느려지고 행동은 상당히 연극적으로 바뀐다. 시간은 이미 느린 시간대로 전화됐다. 스스로 또는 강제적으로 제동이 걸린 것이다. 바닥의 간헐적 물들 때문에. 갑자기 주의를 기울이며 차분해진다. 감각은 예민해지고 민감해진다.
물은 이 강렬한 햇볕에 마르지 않나? 하고 생각했는데 유심히 지켜보니 바닥에 미세한 구멍들이 있다. 마치 노출 콘크리트벽이나 바닥의 자연스러운 기포처럼. 자세히 보지 않는 한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이런 앙큼함 구멍 같으니라고. 물도 끊임없이 계속 일정량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은 제법 콸콸 나오고 어떤 것은 나오는 듯 마는 듯한다. 다 제각각이다. 살아 움직이듯. 앉아서 봐도 누워서 봐도 모두 다른 세상, 다른 작품을 만들어 내니 지루할 틈이 하나도 없다.
고요한데 지루하지 않고, 볼게 많아 분주해도 평화롭다. 아무도 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다. 심지어 아이들도. 사람이 내는 소리가 일체 사라지자 자연의 소리에 더 쉽게 가까워진다. 나는 이렇게 자연이 예술하게 만드는 작품을 최고로 생각한다. 자연만큼 아름다운 예술이 어디 있는가. 거기에 사람도, 자신도 모르게 예술의 한 형태로 자리 잡고 있는 것, 너도 나도 예술이 되는 것. 아! 정말 대단한 미술관이다.
아무 작품도 없는 것 같은데 너무나 많은 작품을 보고 나왔다는 생각이 드는 미술관이었다. 충만하고. 감격스럽고 즐거웠다.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시작해 끝까지 자연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게 만드는 미술관, 자연의 아름다움에 녹아든 사람이 또 다른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는, 살아있는 역동성, 다양성. 자연의 일부로 들어감으로 인한 인간의 가장 편안하고 원초적인 안정감, 자연의 일부분이 되어 보는 이런 체험은 무척 의미 있다. 13500원 내고 들어갔는데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많은 걸 보고 나온 미술관. 여기도 고치현립 마키노 식물원처럼 사계절 모두 다 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왔다. 하루가 뿌듯하다.
뮤지엄 옆엔 뮤지엄 미니미 같은 작은 건물이 하나 있다. 그곳에 갤러리 카페를 만들어 놓았다. 뮤지엄에서는 사진을 못 찍으니 다들 이 건물 안에서 사진을 찍으며 대리만족한다. 안으로 들어서니 뮤지엄 기념품 점이 있다. 감동이 제법 커서 아주 작게 도록을 사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당연히 그럴 수 없음을 나는 안다. 우쿨렐레 가방도 무거워 안 들고 온 상황에 그 무거운 도록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오후 두 시가 넘어가는 그때까지 아무것도 못 먹었기에 너무 배가 고팠다. 카페에서 베이글과 음료를 주문했다. 다디달게 빵조가리를 베어 물며 테시마 뮤지엄에서 받은 감동의 흔적들을 고이고이 가슴속에 저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