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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Feb 07. 2024

나의 전성시대에 대해 쓰기

애쓰는밤 230921

6시 30분 기상. 씻고 7시 아침밥을 먹는다. 오늘도 화장은 스킵하고, 그래도 입술이 너무 까마니까 틴트 하나 손에 집히는 대로 발라본다. 7시 30분 현관을 나선다. 한 손으로는 버즈를 귀에 끼우고 다른 한 손으로는 쉴 새 없이 카카오 버스앱 새로고침 버튼을 누른다. 8분 37초. 정류장까지는 조금 빠듯한 시간. 보폭을 늘려본다.


8시 30분 출근 완료. 매일 아침 회사로 배달되는 내돈내산 점심 도시락이 가장 먼저 나를 반긴다. 내 이름 석자가 크게 적힌 쇼핑백에 도시락을 야무지게 담아 냉장고로 직행. 오늘도 미쳐 날뛰는 여의도 점심값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비슷한 시간에 출근하는 옆자리 과장님과 1층 카페에 가서 아이스 롱블랙을 산다. 점심 외식은 포기해도 커피는 못 참지. 입주사 할인받아 3520원. 그래도 서른두 살인데 이 정도는 쓸 수 있잖아? 초록색 오덴세 텀블러에 담긴 커피를 한 모금 쪽 빨아 마시고는 다시 회사로 올라와 자리에 앉는다.


12시 30분, 점심시간. 오전의 네 시간이 어디로 사라졌냐 묻는다면 그건 뭐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이 일 좀 하고 뉴스도 좀 읽다가 사내 메신저로 팀장님 욕도 좀 하고 그러다가 뒤통수가 뜨거우면 괜스레 주위를 한 번씩 훑어보며 시간을 보낸다. 틈틈이 스트레칭도 하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괜히 탕비실 간식 박스를 휘적휘적거리면서.


5시 30분 퇴근. 이 작디작은 회사에 유일하게나마 있는 복지인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십분 활용해 빠르게 여의도를 벗어난다. 퇴근 후의 일상은 매일 다른 듯 비슷하다.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PT를 받고, 목요일에는 글쓰기 모임에 참여한다. 주말 포함 한 주에 1-2회 독서모임이 있고, 한 시간 동안 러닝머신만 걷다 오는 유산소 데이도 최소 두 번은 챙기려고 노력한다. 운동을 가는 날에는 밤 9시 즈음이 되어서야 늦은 저녁(이라고 하기엔 볼품없고 맛도 없는 닭가슴살과 방울토마토)을 먹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퇴근과 동시에 동생에게 카톡을 보낸다. "헤이헤이 저녁 뭐먹쓰?"


밀린 집안일도 하고, 내 몸도 깨끗하게 씻겨주고, 퇴근길에 보다만 유튜브도 이어서 보고, 스우파 메가크루 클립을 n회차 다시보기하고 나면 어느덧 자정이 가까워온다. 새나라의 어른이는 잠자리에 들 시간이다. 충전기에 올려뒀던 갤럭시워치를 다시 손목에 장착한다. 편안하게 누워 눈을 감고 내일의 수면 점수를 기대하며 심호흡을 한다. 규칙적으로 굴러가는 일상의 가장 큰 기쁨은 매일 아침 갤럭시워치가 보내주는 한 줄의 메시지다. "어젯밤엔 푹 잤습니다!"


예상되는 내일이 있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매일 새로이 깨닫는 요즘이다. 크게 슬프거나 분노할 일이 없는 만큼 미치도록 기쁠 일도 없지만 그래서 더 좋다. 이제는 안다. 단조로운 몰입이 주는 즐거움을. 노래방만 가면 자우림의 <일탈>을 불러제끼던 중학생은 이제 없다. 호숫가에 앉아 물멍을 때리듯 조용하고 불란하게 나의 전성시대가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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