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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Feb 07. 2024

고백에 대해 쓰기

애쓰는밤 231005

책을 내려고 했던 적이 있다. 당시 유행하던 자기 계발형 에세이였다. 완성된 원고를 수많은 출판사에 투고했고, 몇 곳의 제안을 받아 계약서에 싸인까지 했었다. 2019년의 이야기다.


작은 고백 하나, 사실 나는 계약한 출판사의 이름도 모른 채 투고했다. 출간만 할 수 있다면 어느 곳이라도 상관없었다. 작은 출판사의 대표님을 망원역 스타벅스에서 만났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원고를 읽는 내내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기분이었다고. 평생 험한 산을 오르느라 고생했겠다고. 꽤나 우쭐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그랬다. 나는 내가 세상의 모든 이치를 깨닫고 어떤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딱 열흘 뒤, 엄마가 돌아가셨다. 내 원고의 주인공이었던.


엄마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내 기억 속 엄마는 맨정신이었던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나는 동생의 손을 잡고 술 취한 엄마를 찾아 망원동 거리를 헤매었다. 그러다가 중학교에 올라가던 즈음부터 아빠와 살게 되었고, 점차 엄마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전화도 잘 받지 않았고, 지척에 살고 있지만 일 년에 한 번 같이 밥 한 끼를 먹을까 말까 했다.


내가 스물아홉이 되던 해의 여름, 그러니까 2019년 7월, 엄마가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마주한 엄마의 몰골은 처참했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의인화하면 그런 형체이지 않았을까. 사람의 피부색이라고 보기엔 어려운 거무죽죽한 얼굴에 생기 없는 누런 두 눈이 나를 향했다. 나는 가방을 열어 제본해 둔 원고를 꺼냈다. 그리고 그 두툼한 종이뭉치를 엄마 앞에 내려놓고 돌아서서 병실을 나왔다.


에세이 한 권에는 몇 글자의 마음이 담길까. 책을 통해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나는 술에 찌든 부모 아래 태어나서(기), 비어버린 사랑의 자리를 불안으로 채우며 성장했지만(승), 글쓰기를 만나 성찰하는 어른이 되었고(전), 결국에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결)"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날 병실에 두고 온 내 마음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무엇이었다. 

 

기. 나는 당신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불행했노라고,

승. 내가 어엿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남은 건,

전. 온전히 나의 힘이었다고,

결. 그러니 당신, 제발, 죽어서도 행복하지 말라고.

 

나는 죽어가는 엄마에게 내가 가진 가장 날카로운 고백을 휘둘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한 진심이었다. 가끔 2019년 7월 세브란스의 병실을 떠올린다. 엄마가 원고를 읽었는지 모르겠다.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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