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단쓰기클럽 240225
며칠 전 동생이 냄비 하나를 새까맣게 태워먹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온 집안에 매캐한 냄새가 가득했다. 놀란 마음에 동생 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헤드셋을 장착한 채 게임을 하고 있던 동생은 너무나 평온한 얼굴로 "왔어?"하고 물었다. 동생은 김치찌개를 데우려 가스레인지에 올려두고는 게임을 하느라 잊었다고 했다. 냄비 하나를 저 세상으로 보내버렸다며 해맑게 "고 투더 헬"이라고 말했다. 현관문에서부터 동생 방 문을 열기까지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단어들을 떠올렸다. 연기, 가스, 화재, 라이터, 번개탄 등등. 아무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마음과 아무 일도 아니어서 불편한 마음이 동시에 일어났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얼굴로 나의 불안을 건드린 동생에게 화가 났다.
탄 냄새는 며칠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바닥 장판과 벽지까지 곳곳에 눌어붙어 영원히 내 심기를 건드릴 모양이었다. 매일 아침 방문을 열고 나와 주방에 베인 탄 냄새를 마주할 때면 나는 생각했다. 나는 도대체 이 냄새에게서 무엇을 바랐던 걸까. 내 불안이 맞았길 바랐던 걸까. 그랬더라면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하며 안도했을까.
내 삶의 향기는 결국엔 옷장 속 코트에까지 베어버린 탄 냄새 같았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은 불안과 이 마음이 틀리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불안의 근거를 확인받고자 하는 나. 결국에는 실망하는 나.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불안하기 위해 불안한 나 자신을 다시 한번 직면하는 나.
까맣게 타버린 냄비는 이미 내버려진 지 오래지만, 그 냄새는 아직까지도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