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는밤 240222
이번주엔 내내 비가 왔다. 축축함이 배어있는 이불에서 눈을 뜨면 창문 밖은 아직도 한밤중 같았다. 날씨 따라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출근길 버스에 올랐다. 습기로 코팅된 버스의 창문으로는 밖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번주엔 내내 초조했다. 2024년 연봉 책정액이 통지될 예정이었다. 내가 얼마나 필요한 사람인지가 꾹꾹 눌러 담긴 여덟 자리의 숫자가 고딕체로 쓰여 이메일로 전달될 테다. 아마도 목요일, 아마도 저녁 7시, 사람들이 모두 퇴근한 뒤에.
드디어 목요일. 일찍이 깨어난 정신과 달리 늘어진 몸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전기장판에 데워진 이불속에서 더듬더듬 휴대폰을 찾아 오늘의 날씨를 검색했다. 어젯밤에는 비가 왔는데 지금도 내리려나, 빗소리는 안 들리는 것 같은데, 생각하면서.
출근길 비에 잘 젖지 않는 운동화를 골라 신고 현관을 나섰다. 밖은 온통 새하얀 색. 어젯밤 내리던 비는 눈송이가 되어 밤사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회사에 들어서자 삼삼오오 모여 떠들던 팀원들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무어라무어라 말을 하는데 귀에 꽂은 버즈 탓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흘러나오는 동방신기의 Love In The Ice를 흥얼거리며 대충 허공에 손을 휘적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들의 손인사가 승진 축하 인사임을 깨달았다. 별 감흥은 없었다. 그냥 오늘 아침 예쁘게 쌓인 눈을 봐서 좋았고, 블랙아이스 탓에 젖은 신발이 불쾌했다. 여섯 명의 팀원이 승진을 했고, 나는 그들의 파티션에 끼워줄 새 명찰을 출력했다.
승진 소식에도 마냥 들뜨지 않았던 건 사실 진짜 기다리던 것은 승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연봉, 그래, 연봉.
노트북 화면에 띄워진 아웃룩은 쉴 새 없이 새로고침되고 있었다. 2시, 3시, 4시. 컴퓨터 속 시간이 야속하게 흘러가는 동안 나는 마른 입술을 물어뜯으며 애써 초조함을 달랬다. 그리고 5시, 마침내 도착한 메일 한 통.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2024년 연봉을 안내합니다."
벌써 통보하다니, 평소보다 두 시간이나 빠르게, 사람들이 모두 회사에 있을 코어타임에! 도대체 이것은 무슨 시그널인가, 생각했다. 자꾸만 부풀어 오르는 마음을 겨우 붙들어 메고선 메일에 첨부된 파일을 열었다.
암호 입력.
억만년 같은 로딩.
마침내 눈에 들어온 여덟 개의 숫자.
현실 부정.
다시 확인.
헛웃음.
일십백천만십만백만천ㅁ..
그럴 리가.
확인.
또 확인.
확인.
확인.
호ㅏㄱㅣㄴ..
나는 조용히 메일을 닫고 잡코리아에 로그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