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단쓰기클럽 240505
저는 가성비주의자입니다. 무엇을 소비하든 가성비가 아주 중요한 사람이죠. 그렇다고 무조건 싼 것만 구매하는 건 아닙니다.
여기까지 쓰고 문득 가성비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져서 잠깐 검색을 해봤는데요, "‘가격 대비 성능’의 준말로 소비자가 지급한 가격에 비해 제품 성능이 소비자에게 얼마나 큰 효용을 주는지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하네요. 출처는 한경 경제용어사전.
‘가격 대비 성능’이라는 말은 언제나 저에게 1순위의 가치인 듯합니다. 제가 들인 돈이나 시간, 노동의 가치가 평가절하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는 마음이 지나치게 큰 탓일 겁니다.
가성비주의자인 제가 유난히 까다롭게 선택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미용실을 고르는 일일 겁니다. 저는 중학생 때부터 머리카락을 가만히 두고는 살 수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방학이면 온갖 펌을 섭렵했고, 성인이 되자 탈색과 염색의 세계에 발을 들여놨었죠. 그러려면 소위 말해 "머리를 잘하는" 헤어디자이너가 필요했습니다. 제 기준에서 "머리를 잘한다"는 것은 제가 원하는 모양의 결과물을 내놓는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추가로 머리카락의 손상을 최소화해 주고, 시술을 받는 내내 나에게 시답잖은 농담을 건네지도 않으면서, 제가 미용실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을 최소화해 주는 것까지를 모두 포함해야 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저는 얼마의 금액이든 지불할 용의가 있었습니다. 이게 제 기준의 가성비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마음에 들었던 디자이너가 홍대점에서 강남점으로 옮겨가도, 마곡에 개인샵을 차려도, 따라다녔습니다. 그러기를 10년이 지나고 제 취향과 그분의 취향이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저는 또다시 미용실 유목민이 되었습니다. 이곳저곳을 떠돌며 다음 대상을 물색했고,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요즘 기준, 저에게 "머리를 잘한다"는 말은 머리카락이 뻗치지 않게 볼륨매직과 커트를 해준다는 의미입니다. 작년 초, 오랜 꿈이었던 숏컷 스타일에 도전해 본 뒤로 지금은 머리카락을 열심히 기르고 있는 중인데요. 거지존에 진입하고 나니 층이 많은 머리카락들이 제각각 자기주장을 해대서 매일 아침 거울을 마주하는 게 두려울 지경입니다. 시간에 쫓겨 대충 질끈 동여 메거나 집게핀으로 말아 올려 그들의 주장을 한데 모아보려고 노력하지만 이 마저도 쉽지 않더라고요.
최근에는 여의도에서 꽤 유명하다는 미용실에서 볼륨매직을 했습니다. 거의 30만원에 가까운 비용을 지불하면서요. 그런데 두피에 화상을 입었고, 매직한 머리는 다음날부터 다시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머리카락에 층을 조금 줄여야겠다면서 올 가을에는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싶었던 저의 희망마저 댕강 잘라버린 그 디자이너에게 참을 수 없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다이슨 에어스트레이트너를 샀습니다. 이게 60만원이니, 미용실 가서 볼륨매직 두 번 안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사서 5년 쓰면 한 달에 만원 꼴인데 이 정도면 꽤 가성비가 아니냐고, 택배를 뜯는 제 옆에 서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동생에게 괜히 변명의 말을 늘어놓았습니다.
오늘 아침에 에어스트레이트너를 처음 개시하는데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요. 네,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이상 가성비주의자의 다이슨 지름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