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는밤 240606
아빠의 네 번째 수술이 결정되었다. 날짜는 2주 뒤. 병원에서는 당장 수술 전 필요한 검사들을 받아야 한다며 우리를 재촉했다. 급하게 회사에 휴가를 제출하고 다음날 아침 6시, 나는 한쪽 눈이 안 보이는 아빠를 이끌고 병원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 굳게 닫힌 창문과 함께 내달리는 버스는 후덥지근한 공기로 가득했다. 나는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목덜미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외출 전 손수건을 하나씩 챙긴다. 유달리 더위를 많이 타는 탓에 내 여름은 5월 말 즈음 시작된다. 아직 에어컨을 켜기엔 이르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외로이 땀을 흘리고, 누가 볼세라 손에 쥔 손수건으로 급하게 닦아낸다. 친구들은 좋은 날씨를 만끽해야 한다며 자꾸만 약속 장소를 야외로 잡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른 핑계를 대가며 망원 한강지구에서, 여의도 공원에서, 이태원 루프탑에서 도망쳐 나온다. 6월은 내게 1년 중 가장 더운 달이다.
평소보다 조금 빨리 병원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 교통량이 적은 덕이었다. 병원도 조금은 한산했고, 우리는 본관 2층으로 올라가 심전도 검사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각종 검사들. 전신마취 수술을 위해서는 이런저런 검사가 필요했다. 예컨대 폐기능 검사, 흉부 엑스레이, 채혈, 채뇨 등. 나는 아빠의 왼쪽에 서서 아빠의 왼팔에 팔짱을 끼고 본관 2층에서 1층으로, 별관으로 아빠를 이끌었다. 병원은 더웠다. 냉방을 충분히 하고 있지 않은 건지, 많이 돌아다녀서 그런 건지, 그냥 나만 더운 건지 잘 모르겠지만, 백팩을 멘 등줄기를 따라 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나는 검사실 밖 대기 의자에서 등을 조금 떼어 앉았다. 가방에서 손선풍기를 꺼내 들기엔 병원이 지나치게 조용했다.
수술 전 검사를 마치고 별관 지하 1층 안과에 들어섰다. 오늘은 새로운 교수님 진료가 있는 날이었다. 아빠의 수술을 공동 집도해 주실, 아빠의 세 번째 담당 교수님이었다. 눈감고도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빠삭한 안과의 검사실을 요리조리 옮겨가며 진료 전 검사가 이어졌다. 작아진 안구 탓에 힘없이 쳐진 아빠의 왼 눈꺼풀은 연이은 검사로 더 무겁게 내려앉았다. 아빠가 들어서는 검사실마다 어김없이 눈을 좀 더 크게 뜨라는 요청이 들려왔다. 검안기에 턱을 괴고 이마를 붙인 채 바싹 다가가 앉아있는 아빠의 뒷모습에서 습기가 느껴졌다. 땀인지 눈물인지 안약인지 모를 일이었다.
병원에는 유달리 화가 난 사람이 많았다. 내 옆자리에 가방을 내려놓던 남자는 검사실에 안경을 두고 나온 그의 엄마를 비난하며 한숨을 쉬었다. 눈이 아픈 엄마는 다시 검사실로 들어가 안경을 들고 나오며 멋쩍게 웃었다. 남자는 "지금 웃음이 나와? 정신 좀 차려"라고 말하며 한 손을 허리춤에 올리고 다른 한 손으로 연신 손부채질을 했다. 병원은 역시 더웠다. 나는 전광판에 떠있는 숫자의 향연을 바라보았다. 300번대에 접어든 접수번호 사이 우리는 유일하게 남은 두 자리 번호 접수자였다.
그사이 마지막 검사를 마친 아빠는 내가 맡아둔 자리로 돌아와 털썩 주저앉았다. 무슨 검사가 이리 많냐며, 수술받기도 전에 사람 죽어나겠다고 한참을 투덜대던 아빠는 주머니에서 더듬더듬 전화기를 꺼냈다. 온갖 안약을 쑤셔 넣어 멀쩡한 눈도 잘 안 보인다고 구태여 한 마디를 더 보태더니 노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산재 자기 부담 진료비는 내가 낸 걸 돌려받는 건데 이걸 왜 당신에게 나눠줘야 하냐고, 서류도 다 내가 떼다 주고 있는데 당신들이 하는 게 대체 뭐냐고 따져 물었다. 나는 아빠에게서 핸드폰을 빼앗아 통화를 종료하고 산동제 탓에 양쪽 눈이 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아빠를 조용히 응시했다. 그리고는 "통화는 나중에 해. 여기 병원이잖아." 허공에 대고 말했다. 정수리 부근에서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진료 대기자는 오늘도 많았다. 두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빠의 이름이 대기자 명단 가장 아래에 떠올랐다. 갈수록 늘어나는 사람들에 공기는 점점 답답해졌고, 진료실 앞 간호사석은 내 차례는 언제 오냐며 따지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마침내 호명된 아빠의 이름. 진료실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검사 결과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소식을 접하고 말았다. 새로운 의사 선생님은 이번 수술이 마지막은 아닐 거라며, 최선을 다할 거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아빠의 입원기간 동안 동반할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는 소견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직장인이 상주 보호자가 되려면 적어도 주치의 소견서 정도는 필요한 법이었다. 출근을 하지 않는 대신 급여가 깎일 테지만 감지덕지하게도 근로자라는 신분은 유지해 줄 테니 말이다. 잠시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소견서를 써주겠다는 말과 함께 우리는 진료실에 입장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다시 대기자가 되었다.
다시 병원 복도. 이제는 우리처럼 진료를 마친 사람들이 다음 예약은 언제 잡아줄 거냐며 간호사를 에워싸고 아우성이었다. 기다림에 지친 나 역시 그 대열에 합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러기엔 그들의 열기가 너무 뜨거웠다.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녹아버릴 것 같아서 나는 한 뼘 떨어진 대기석에 앉아 사람들의 정수리에서 피어나는 아지랑이를 가만히 구경했다. 시간이 흘러도 병원 복도의 온도는 떨어질 줄 몰랐고 나는 찬물 속에 잠겨 가스레인지 위에 올라간 개구리처럼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다. 한참 뒤 주치의 선생님은 작성한 소견서를 들고 복도에 나와 아빠의 이름을 불렀다. 소견서에는 단 한 줄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상기 환자 2024.06.18 좌안 수술 예정으로 상주 보호자의 동반 입원이 필요함." 나는 땀이 배어난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러 닦고 가벼운 종이 한 장을 받아 들었다.
산재 대상자는 원무과에서만 수납이 가능하다고 했다. 소견서도 원무과에 가져가면 직인을 찍어줄 거라고, 그래야만 효력이 있다고 했다. 나는 또다시 아빠의 왼쪽에 서서 별관 지하 1층에서 본관 지하 1층으로, 다시 1층 원무과로 아빠를 이끌었다. 원무과 번호표 발급기 앞에는 서너 명의 직원이 사람들을 한쪽으로 모아 부르고 있었다. 5월 20일부터 신분증 지참이 필수라며 진료 전 신분증을 등록하고 가시라고 외쳐댔다. 이미 신분증 등록을 완료한 우리는 소리 지르는 사람들을 가로질러 번호표를 뽑았다. 대기자는 어림잡아 80명. 열개의 창구가 풀가동되고 있으니 금방 우리 순서가 올 거라며 빈 대기좌석을 찾아 눈을 굴렸다.
오가는 사람들로 바깥의 공기가 자꾸만 유입되어서인지, 그냥 사람이 많아서인지 병원 로비는 후덥지근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줄지 않는 대기자 수에 미간을 찡그리다가 시원한 음료로 기분이라도 달래 볼 심산으로 로비 옆 가판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아이스 바닐라라테를 샀다. 아메리카노는 지나치게 썼고, 바닐라라테는 지나치게 묽었다. 절반도 마시지 않은 음료를 반납대에 올려두고 보니 얼음이 녹아 반쯤 투명해진 음료들이 여기저기 쌓여있었다. 일회용 컵 주변에 잔뜩 맺힌 이슬이 땀방울처럼 흘러내려 바닥에 고였다.
원무과 1번 창구 앞 의자에 앉아 아빠의 신분증을 내밀자 원무과 직원은 잘 프로그래밍된 키오스크 마냥 수납과 영수증 및 각종 서류 발급, 소견서 원본 배부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무언가를 물어볼 틈도 없이 끝난 용건에 나는 어정쩡하게 자리를 비워주며 계속 머릿속을 헤집었다. 분명 무언가 잊어버린 것 같은데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그냥 끈적끈적한 살갗에 닿는 찝찝함일 거라 생각하며 병원을 빠져나왔다. 병원에 들어선 지 일곱 시간 만이었다.
더위에 푹 젖은 채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옷을 갈아입을 여력도 없이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시야에 창문이 들어왔다. 아직 창문형 에어컨을 설치하지 못해 굳게 닫혀 있는 창문이. 겨울에 접어들며 잠시 떼어 다용도실에 옮겨둔 에어컨이 절실했지만 지금 내게는 그걸 다시 설치할 체력도, 도와줄 동생도 없었다. 빛바랜 선풍기를 발가락으로 더듬어 켠 다음 그대로 눈을 감았다. 집게핀으로 말아 올린 머리카락 사이로 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이 여름이 모두 지나간 뒤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