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 생명의 비연속성에서

Day19 ; 천안

by 현정

천안에서의 둘째 날. 천안에 왔으니 독립기념관은 한 번 가봐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문제는가보고 싶은 미술관이 한 곳 더 남아있다는 사실이었다. 독립기념관을 가자니 미술관이 너무 가고 싶었고, 미술관을 가자니 괜히 매국노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두 곳을 모두 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나갈 채비를 마치고 운동화에 발을 욱여넣는 순간까지 목적지를 정하지 못했다. 일단 버스정류장에 가서 두 곳의 목적지로 가는 버스 중 먼저 도착하는 버스를 타기로 선택 없는 선택을 했다. 오늘 내 하루를 운에 맡겼다.




미술관에 가게 되었다. 버스가 결정해준 운명은 아니었다. 오늘은 월요일, 독립기념관의 정기 휴무일이었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도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속으로 작게 쾌재를 불렀다. 국가를 배반하는 것 같은 괜한 죄책감 없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미술관에 갈 수 있게 되었다. 불과 몇 분 사이에 중력이 약해진 기분이었다.


오늘 방문한 리각미술관에서는 민녹주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미술 문외한인 나에겐 다소 생소한 이름이었지만 전시의 주제가 마음에 들어서 관람을 결정했다. 민녹주 개인전의 테마는 <생명의 비연속성에서>였다.




작은 전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며 이 전시의 주제가 왜 “생명의 비연속성에서”인지 생각해보았다. 흰 벽에 걸린 절제된 색채의 작품들에는 사람과 동물, 식물과 같은 생명은 물론, 생명이 없는 사물까지도 표현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연결되어 있는 듯 끊어진 작품들은, 멀리서 바라본 하나의 커다란 풍경 같기도 하고 반대로 무엇인가를 아주 면밀히 들여다본 것 같기도 했다.


연속성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성질을 말한다. 그렇다면 비연속성이 의미하는 것을 무엇일까. 이어져오던 것이 잠시 멈춘 상태를 말하는 걸까 아니면 영원히 중단되어 다시는 연속될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 걸까. 연속의 반대말은 비연속일까 불연속일까. 전시의 주제를 “생명의 불연속성에서”가 아닌 “생명의 비연속성에서”라고 지은 것에도 의도가 있었던 걸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이 순간 내 상상은 분명한 연속성을 띄고 있었다.




생명의 비연속성이 담고 있는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어떤 생물이든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생명이 연속된다. 생명이 연속되지 않는 순간은 일생에 단 한 번, 죽는 순간뿐이다. 그렇게 생각해왔다. 그런데 과연 그게 맞을까? 생명은 연속성을 띄는 게 맞나? 어쩌면 이 작품들처럼 연결된 듯 끊어져 있는 게 아닐까? 아니, 연결되어 있다는 건 애초에 끊어져 있었음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그럼 결국 연속과 비연속은 같은 상태를 의미하는 건가?


어렵다. 그래서 재밌다. 많이 생각하고 혼자 결론을 내려봤다. 죽음도 삶도 끊어져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연속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지금의 엄마와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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