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9일이 꼭 우리 사이 같다, 엄마

by 현정

이별한 지 200일, 2020년 2월 29일의 기록




엄마, 잘 지내? 오늘은 엄마가 하늘나라로 간지 딱 200일 되는 날이야. 근데 오늘이 윤일이래.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날 있잖아. 2월 29일.


여기저기 2월 29일에 대한 글이 많이 올라왔어. 사람들은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날이라고 조금 들뜬 것 같아. 나한테는 그냥 엄마가 죽은 지 200일되는 날일 뿐인데 말이야. 엄마가 죽기 전이었으면 나도 오늘 윤일에 대한 글을 썼을지도 모르겠어. 글 쓰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글감일 테니까.


있잖아, 엄마.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2월 29일이 꼭 우리 사이 같은 거 있지. 특별하다고 하자니, 4년에 한 번은 꼭 돌아오니까 익숙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평범하다고 하자니,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고. 그러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엄마랑 이별하고 난 뒤에 엄마에 대해 더 알아가는 것 같아. 나 엄마가 보라색을 좋아했는지도 몰랐어. 49재 때, 이모들이랑 언니네 가족이랑 동생이랑 엄마한테 갔다 왔잖아. 추모공원 올라가는 길에 엄마 납골당에 걸어둘 리스를 샀는데 막내 이모가 보라색을 고르더라. 언니 보라색 좋아했었잖아, 하면서. 근데 나는 몰랐어. 엄마가 보라색을 좋아했는지. 나는 엄마가 빨간색을 좋아한 줄 알았는데.. 그게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


얼마 전에는 동생 안경 바꾸러 동네 안경점에 갔는데, 안경점 사장님이 엄마 안부를 묻는 거야. 학생 때까지는 매번 엄마랑 같이 갔었으니까. 그래서 엄마 돌아가셨다고 얘기하면서 그 뒤로도 엄마가 여기 자주 오셨었는지 여쭤봤는데 사장님이 그러더라. 엄마는 매번 안경을 고치러 왔었다고, 우리 안경은 늘 좋은 걸로 해줬었지만 본인 안경에는 돈을 안 쓰셨었다고. 그날도 참 속이 상했어. 엄마 생전에 좋은 안경 하나 못해줬었다는 게.


엄마. 나는 이제야 조금씩 엄마를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 사실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말을 꽤 오래전부터 하고 다녔는데, 아니었더라고. 나는 엄마가 불쌍했지만 그래도 미웠어. 안타까웠지만 여전히 원망스러웠고, 사랑했지만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었어. 그리고 엄마를 이해하는 척했지만 이해하지 않으려고 애썼어. 엄마를 이해해버리면,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용서해버리면,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못한 내가 너무 나쁜 사람이 되어버릴까 봐 좀 겁이 났거든.


그래서 계속 부정했어. 엄마가 그렇게 술에 의지했던 건 그만큼 인생이 힘들어서였을 거라고 겉으론 이해하는 척하면서 사실 속으로는 나약하다고 생각했어. 엄마가 술 때문에 나에게 상처를 줬으니까 나한테 엄마를 비난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어. 나 참 나빴다, 그치.


구정 때 내 마음대로 빨간색 리스 사다가 걸어두고 왔는데 마음에 들지 모르겠네. 엄마가 보라색을 제일 좋아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엄마하면 빨간색이 떠올라. 다음에 가면 다시 엄마가 좋아했던 보라색 리스로 바꿔줄게. 매번 보라색이면 조금 질리잖아. 그치?


엄마. 2월 29일은 4년 뒤에 또 올 거야. 4년의 시간이 지나면, 그땐 엄마랑 내가 지금보단 조금 더 가까워져 있겠지?


있잖아, 엄마. 엄마도 아마 몰랐겠지만, 사실 나도 보라색 엄청 좋아해.


보고 싶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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