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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Jan 09. 2020

책을 읽는 사람의 햇살은 바삭바삭하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봤었다. 3개의 시즌, 총 32회차의 방송을 모두 챙겨 봤을 정도니 광팬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내게 전 시즌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하나의 에피소드를 말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딱 한 문장만을 이야기할 것이다.


햇살이 바삭바삭하다.

나는 햇살이 바삭바삭하다는 이 한 문장에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




책은 왜 읽어야 할까? 책을 읽는 것은 유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책을 읽는 것은 “왜” 유익할까?


이 물음에 즉시 떠오르는 대답만 해도 셀 수 없이 많다. 책을 읽으면 질 높은 지식과 정보를 습득할 수 있고, 해보지 않았던 경험과 다른 사람의 인생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볼 수 있다. 나의 주장과 같은 논지의 책을 읽으며 내 주장을 탄탄히 할 수도 있고, 내 생각과 반대되는 주장의 책을 읽으며 생각의 편향을 방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책은 나를 알아가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이며, 최종적으로는 나를 조금 더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이 외에도 많은 장점이 있겠지만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바는, 가장 마지막 이유인 “나를 조금 더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라는 부분이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만으로 행복해진다고 말하긴 힘들다. 책을 통해 행복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보통 책을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 책에서 말하는 바를 실제 자신의 인생에 대입하여, 몸을 움직이고 생각을 고치고 그 상태를 유지하는, 인고의 시간을 지나 행복을 쟁취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새벽에 일어나기, 명상하기, 매일 운동하기, 매일 글쓰기, 일주일에 한 권씩 책 읽기, 외국어 공부하기, 편식하기(몸에 나쁜 음식은 먹지 않기), 나를 사랑하기, 용서하기 등등, 보다 나은 인생을 위해 책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대부분 어렵다. 그렇기에 이것을 실제 내 삶에 적용하고 지켜나가는 것을 “인고의 시간”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런 어려운 것들 말고, 내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가장 쉽고 빠르게 행복을 가져다준 것이 바로 “어휘”이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책을 읽는 사람의 햇살만이 바삭바삭하기 때문이다.



평균적으로 사람이 살면서 사용하는 단어가 몇 가지나 될까? 통계를 찾아보려 했지만 찾지 못했다. 그 이유를 내 마음대로 추측해 보건대, 개개인의 차이가 지나치게 큰 탓에 평균치가 그다지 큰 의미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어휘의 수가 늘어난다. 작가의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책을 쓸 때 가장 조심하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어휘이기 때문이다. 같은 어미가 지나치게 반복되지는 않는지, 무언가를 설명하려 할 때 이 단어보다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유의어는 없는지, 수차례 확인한다. 작가와 국어사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이다. 덕분에 독자는 그렇게 심사숙고해 고른 단어들을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흡수할 수 있다.


사용하는 어휘의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세상을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내 감정도 정확하게 알아채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표현에서 오는 모호함을 제거하고 나면 명료함만이 남는다. 오해 없는 세상에는 이해만이 남고, 이해로 가득한 세상은 당연히 행복할 수밖에 없다.



알쓸신잡에서 햇살이 바삭바삭하다는 말로 내게 충격을 안겨준 김영하 작가는 “작가란 말을 수집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대통령 연설 비서관이었던 강원국 작가는 연설문을 위해 “말하다”라는 단어의 유의어를 서른 개나 준비했다고 한다. 이렇게 모인 단어들은 때로는 누군가의 감성을 건드리고 때로는 이성을 건드린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고, 표현하는 만큼 느껴진다. 같은 날, 같은 장소라고 하더라도 “와! 오늘 날씨 정말 좋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와! 오늘 햇살 정말 바삭바삭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느끼는 세상은 다르다. 부모가 자식을 보며 “너무 예쁘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것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새끼, 억만금을 줘도 너랑은 안 바꿔”라고 말하는 것은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내 목숨보다 귀하다”, “네가 죽으라고 한다면 죽는 시늉도 할 수 있다”, “널 만나고 내 세상이 바뀌었다”라는 장황한 말들로 "사랑한다"라는 짧은 말을 대신하려 하는 것일 터이다.


책을 통해 더 많은 단어를 인생 사전에 수집하자. 사전이 두꺼워지면 두꺼워질수록 인생은 다채롭고 행복해질 것이 분명하다.




스무 명의 훌륭한 글쓰기 동지들과 1월 1일부터

#아무리바빠도매일글쓰기 #아바매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매일 쓰는 글들은 블로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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