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양양의 바다와 트럼펫

by 현정

2019년 10월 25일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그날 나는 양양에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두 달쯤 지난 때였다.


유가족 역할은 처음이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었다. 내가 공황에 빠져있는 순간에도 카메라는 돌아가고 있었다. 내 인생이라는 드라마에서 나는 이미 주인공 자리를 내어준 뒤였다.


시간이 필요했다. 이해할 시간이. 해석하고 곱씹어서 내 것으로 만들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잠깐 쉬어가지 않으면 언젠가 이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그래서 여행을 떠났다. 양양은 내 도망의 첫 번째 목적지였다.


배낭여행을 결심하고 가장 먼저 준비한 것은 브런치 작가 신청이었다. 그때의 나는 무엇이든 써야만 했다. 머리가 터지도록 생각하고, 그 생각 뭉텅이를 한순간 비워내기 위해 글을 써야 했다. 무한한 시간의 공간에 나를 내던졌다. 나는 쉴 새 없이 떠오르는 감정을 꼭꼭 씹어 삼키고 뱉어내기를 반복했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배설하고 싶진 않았다. 브런치는 나의 난잡하고도 명료한 생각을 쏟아내기에 꽤 적절한 공간이었다.




여행 2일 차, 해파랑길 44코스를 따라 해안가를 걷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매서운 바닷바람과 파도의 경합은 간간이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마저 덮을 만큼 강렬했다. 그 굉음을 비집고 낯선 선율이 들려왔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서는 상상치도 못했던 트럼펫 소리였다.


내가 걷고 있는 길 위쪽의 정자에서 누군가 바다를 향해 트럼펫을 불고 있었다. 정자를 등지고 서서 트럼펫과 같은 바다를 바라봤다. 시각과 청각의 부조화는 내게서 생각을 앗아갔다. 한 달 가까운 여행 기간 동안 유일하게 아무 생각 없이 숨 쉴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한참을 서서 바람과 파도, 트럼펫의 앙상블에 잠겨 있다가 문득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게나마 카메라를 켜 동영상을 찍었다. 녹화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주는 끝이 났지만, 왠지 계속 트럼펫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솔직하고 처절하게 써 내려간 여행기는 내 브런치의 첫 번째 작품이 되었다. 그런데 양양의 트럼펫 소리는 차마 이 공간에 기록해둘 수가 없었다. 얼굴도 모르는 연주자의 트럼펫 소리가 그때의 나와 어쩐지 너무 닮아서, 그냥 아껴주고 싶었다.


지금도 그때 촬영한 영상을 종종 재생해보곤 한다. 트럼펫 소리가 머리 뒤에서 들려오는 기분이다. 이제는 트럼펫 소리가 구슬프게 들리지 않는다. 그립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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