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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Sep 21. 2021

그깟 추석이 뭐라고

느지막이 눈을 뜬 추석 당일, 먼저 일어나 있던 동생의 방문을 열며 “점심 뭐 먹지?”라는 말로 하루를 시작했다. 동생은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집어 들어 배달앱을 켰고, 나는 “오늘 문 연 집이 있을까?” 물었다. 휴대폰 화면을 몇 번 휘적이던 동생은 “생각보다 영업하는 데 많네.”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덮밥을 먹을까 수제버거를 먹을까 냉면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수제버거를 주문했다. 바뀐 명절의 풍경은 배달앱에서 가장 진하게 느껴졌다.


내게 추석이라 함은 민족 대명절이라기보다 긴 휴일이었다. 어두운 방에서 TV를 보거나 낮잠을 자는 게 우리 집 명절 풍경의 전부였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친구네 집에 놀러라도 가려고 하면 부모님은 “오늘 같은 날 남의 집에 놀러 가는 거 아니야.”라고 말씀하셨다. 어렸던 나는 “오늘 같은 날”이 어떤 날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냥 추석은 집에서 TV를 보는 날이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학교에 다니면서 추석이 어떤 날인지 배우게 되었다. 보통의 가정이라면 이때 친척을 만나거나 성묘를 간다는 것도 알게 됐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내가 성인이 된 뒤에도 명절날 여전히 우리 가족은 각자의 방에서 각자 할 일을 했다. 딱 하나 달라진 거라곤 추석 당일 집을 나서도 더 이상 “오늘 같은 날 밖에 나가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30년을 살았다. 평범한 휴일 같은 특이한 명절을 보내면서.



동생과 함께 독립한 지 1년 3개월이 지났다. 독립 후에도 내게 명절은 지난 30년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주로 집에서 TV를 보거나 낮잠을 잤고, 심심하면 노트북이나 책을 들고 동네의 문 연 카페를 찾아 나섰다. 최근에는 시골에 내려가지 않는 친구들이 많아져 가끔 친구를 만나기도 했던 것 같다. 내 명절은 달라진 게 없었다. 그런데 아빠나 친척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명절 시즌이 되면 어김없이 전화가 걸려왔다. 작은 아빠, 큰 이모, 막내 이모, 큰 고모까지. 전화 내용은 다들 같은 스크립트를 공유하는 것 마냥 똑같았다. “잘 지내니? - 동생도 잘 있고? - 가끔 먼저 연락 좀 하고 그래라 - 아빠 좀 잘 챙기고”의 기승전결.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생사조차 확인하지 않던 사이가 대부분이었는데,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이 몹시 당황스러웠다. 내게 죄책감을 심어주려는 언사는 솔직히 역겹기까지 했다.


고백하자면, 친척들에 대한 좋은 기억이 나에겐 별로 없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나와 내 동생은 친가든 외가든 어느 시골에 가나 눈엣가시였다. 지 애미 닮아서 이렇다, 지 애비 닮아서 저렇다, 저것들 때문에 새 출발도 못하고 부모가 불쌍하다, 갖가지 언어폭력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알코올 중독에 허덕이는 엄마를 왜 챙기지 않느냐고 쏘아댔고, 아빠는 뼈 빠지게 일하는데 너는 여행을 다니냐며 나무랐다.


그들의 입은 내 인생을 갉아먹었다. 나를 학대했던 이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는 당연히 달갑지 않았다. 추석을 핑계 삼은 전화는 특히 더 그랬다. 내 휴일을 엉망진창으로 헤집어 놓은 핑계가 고작 추석이라니. 그깟 추석이 뭐라고.



연휴에 접어들고 일부러 아빠에게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다. 아빠 좀 잘 챙기라는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오늘 밤이 되면 아빠로부터 “너는 추석인데 아빠한테 전화 한 통 안 하냐”며 전화가 걸려올 게 뻔하지만, 나는 지금 아빠를 마주하고 싶지 않다. 내 추석을 여느 휴일과 다르지 않게 만든 건 아빠다. 그래 놓고 이제와 추석인데 라니. 오늘 같은 날이 어떤 날인지 한 번도 알려준 적 없었으면서 추석인데 라니. 추석이 도대체 뭔데.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화가 나는 건, 아빠에게 절대 전화하지 않겠다고, 그 누구의 가스라이팅에도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이제 내 상처를 제일 먼저 생각하는 인생을 살 거라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굳게 다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나쁜 딸인가 자꾸만 의심하게 된다는 것에 있다. 학대받고 방치되어 자란 건 난데, 나조차도 스스로를 가해자로 만든다. 가스라이팅이란 거 정말 무섭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애써 불안한 나를 달래주려고. 오늘 아빠에게 전화를 거는 것보다 중요한 건 이제라도 지난 30번의 추석에서 상처 받은 나를 보듬어주는 거란 걸 알려주려고. 추석 그거 별거 아니니까 편하게 너의 하루를 보내도 괜찮다고 말해주려고.


아빠를 사랑하지만 오늘 아빠에게 전화를 걸진 않을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아빠에게 전화를 하는 건 나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내는 일이라는 걸 안다. 반항심 혹은 쓸데없는 오기일 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다. 내가 나를 위해 부리는 억지라면, 설과 추석, 일 년에 두 번쯤은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 같은 날에는 내 마음에 아무도 놀러 오지 못하게 해야겠다. 추석은 그래도 되는 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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