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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Aug 17. 2021

MBTI 얘기 좀 제발 그만

사내 인사 평가 방법이 바뀌었다. 기존에는 연말에 한번 직무평가서를 작성해 제출했었다면, 올해부터는 1년에 두 번 자기성장리포트를 작성하게 되었다. 1년간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와 담당했던 일, 업무의 중요도나 난이도 등을 기입했던 직무평가서와는 달리 자기성장리포트는 업무와 전혀 상관없지만 개인적으로 달성한 목표나 얻은 역량도 함께 써보도록 되어있다. 회사가 성과가 아니라 사람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것이다.


꽤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했다. 물론 작성해야 할 서류가 곱절의 곱절이 되었지만 처음이니까 점점 개선될 거라고 믿었다. 리포트 양식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분명 그랬다.


메일로 전달받은 엑셀 문서를 열어보니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인적사항을 적는 시트였다. 그리고 나는 발견하고야 말았다. 성명, 소속, 직급과 함께 기본 정보란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MBTI 결과 입력란을.


그래, IT 기업이니 이해는 한다. 뭐든 앞서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건 다 시도해보고 싶겠지. 그런데 문제는 정작 나도 내 MBTI가 뭔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흔히들 말하는 아무거나봇이다. 점심 메뉴를 고를 때, 친구들과 만날 장소를 정할 때, 여름 휴가지에 대해 의견을 물을 때, 대부분 내 대답은 "난 아무거나 다 괜찮아"이다. 너무 싫거나 피하고 싶은 선택지가 있다면 "아무거나, 근데 너무 매운 건 빼고." 정도의 의견은 피력하겠지만, 대부분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몇 년 전 친구들과 여름 휴가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던 중이었다. 나를 제외한 네 명의 친구들이 호캉스파와 해운대파로 반반씩 나뉘어 서로를 물고 뜯던 도중, 마치 짜기라도 한 양 여덟 개의 눈이 일제히 내게 꽂혔다.


“동산이 보고 결정하라고 하자! 동산이가 가자는 데로 가는 거야!”

“그래그래, 그렇게 하자!”


엉겁결에 나는 캐스팅보트를 손에 쥐게 되었고, 그 숨 막히는 순간 “아무거나”를 시전했다. 호캉스든 해운대든 상관없다는 마음도 물론 컸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내가 어느 하나를 선택했을 때 누군가를 실망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었다. 그해 휴가는 호캉스를 갔던 것 같다. 아마 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몇 달 전에는 점심 회식 장소를 고르지 못해 부장님께 혼이 났던 적도 있었다. 회사에 입사하고 처음 갖는 회식이다 보니 메뉴를 고르는 일이 쉽지 않았다. 팀원들의 취향도 모를뿐더러 나는 그다지 미식가도 아니었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식당이 있더라도 혹시나 실망할까 누구에게도 추천하지 않는 편인데, 생판 알지도 못하는 여의도 바닥에서 회식장소를 찾으라니. 그건 내게 API를 하나 개발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몇 가지 후보라도 추려와 보라는 부장님의 독촉에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부장님이 추천받은 소고기 집으로 회식 장소가 정해졌고, 내 브라우저에 잔뜩 쌓인 여의도 점심 회식, 여의도 한정식, 여의도 중식당 따위의 검색기록은 조용히 전체 삭제되었다. 팀원들을 뒤쫓아 식당에 걸어가면서 내심 ‘소고기가 드시고 싶으셨으면 소고기 집으로 알아보라고 말씀 좀 해주시지. 그랬음 가게 정도는 찾아볼 수 있었을 텐데’하고 생각했다.



나는 나의 이런 부단함이 싫었다.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이 없는 내가 답답하고 때로는 버거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언제부터 나는 취향이랄 게 없는 사람이 되었을까 생각해봤다. 답은 하나였다. 아주아주 어렸을 때, 술에 취한 엄마와 아빠가 매일같이 온 동네가 떠나가라 부부싸움을 했을 때, 이런 부모 밑에서 어떻게 이렇게 착한 아이가 태어났냐는 말을 들었을 때, 그때부터였다.


나는 긴 부부싸움 끝에 엄마와 아빠가 경찰서에 잡혀가도, 거실 바닥이 깨진 유리와 피 묻은 발자국으로 가득해도, 다음 날 가져갈 학교 준비물을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도, 일주일째 같은 옷을 입고 학교를 가도, 그냥 모든 게 괜찮은 착한 아이여야만 했다. 내 감정보다는 엄마, 아빠의 기분이나 동네 어른들의 평가가 더 중요했다.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화를 내거나 떼를 쓰는 방식으로 내 존재를 주장하는 일은 어린 나에게 없는 선택지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착한 아이는 자라서 무색무취한 어른이 되었다.



MBTI 테스트를 했다. 결과가 나왔고, 설명을 읽었다. 나와 잘 맞지 않았다. 다시 시도했다. 다른 결과가 나왔다. 거기에도 나는 없었다. 문득 떠오를 때마다 테스트를 했다. 무슨 오기였는지 두 시간을 카페에 앉아 내리 대여섯 번을 검사해본 적도 있었다. 결과는? 역시 모두 달랐다.


MBTI 이야기만 나오면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기분이나 컨디션에 따라 다른 게 나오기도 한다고, 테스트를 여러 번 하다 보면 자주 나오는 결과가 있을 거라고, 사람들은 나를 위로했지만, 나는 차마 그들에게 두 시간을 한자리에 앉아 MBTI 테스트만 주야장천 했노라고는 고백하지 못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기분은 꽤나 더러웠다.


뭐든 명료한 사람이 부러웠다. 취향이 뚜렷한 사람, 가치관이 확실한 사람, 호불호가 분명한 사람. 나는 이런 사람을 꿈꿨다. 49%와 51%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사람 말고, 매번 같은 MBTI 결과가 나오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유치하게도 내가 바라는 건, “해운대보다는 호캉스가 좋아”라던지 “부장님, 점심 회식으로 샤부샤부 어떠세요? 이 집 되게 맛있대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일이었다.


다음 주까지 자기성장리포트를 제출해야 한다. 비어있는 MBTI 결과란에 어떤 답을 써야 할지, 나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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