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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May 28. 2021

인간관계는 익절할 수 없나요?

10년 지기 친구들이 모여있는 카톡방을 나왔다. 이유는 단순했다. 10년간 알아온 결과 나와 그들의 성향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 어떤 이유로 나는 그들과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되었고, 지난 10년간 쌓아두었던 무언가가 폭발하고야 말았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단지 시간이 흘렀고, 내가 변했을 뿐이었다. 장문의 메시지를 작성했다. 그게 내가 그 카톡방에 남긴 마지막 기록이었다.


우리 다섯은 말 그대로 절친이었다. 매년 휴가를 함께 보냈고, 서로의 연애사는 툭 치면 줄줄 읊을 수 있을 정도였다. 다달이 곗돈을 함께 모으고 있었고, 그 어떤 쪽팔린 모습마저도 공유할 수 있었다. 모두가 서른을 넘겼지만, 우리는 언제 만나도 스무 살, 친구가 전부이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다.


철없던 시절의 나를 만날 수 있게 해 준다는 건 참 고마우면서도 어쩐지 씁쓸한 일이다. 과거는 언제나 미화된다고 하지만, 스무 살 때의 내가 지금에 비해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건 딱 한 가지뿐이다. 지금보다 10년어치의 가능성을 더 가지고 있다는 것. 물론 그 가능성 때문에 사람들이 과거를 그리워한다는 걸 안다. 허나 나는 그러기엔 지금의 내가 너무 만족스러웠다.




10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나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내가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하는지, 어떤 대화가 하고 싶은지, 어떤 여행을 좋아하고, 어떤 주제가 불편한지, 그럼에도 그 불편함에 나를 계속 집어던지려는 이유는 무엇인지, 어떤 감정에 집중하고 싶은지,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나에 대한 정보는 스무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구체화되었다.


그래서 여전히 스무 살의 시간에 멈춰있는 그 모임이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스무 살의 나는 나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취향이랄 게 없어서 “아무거나”, “난 다 좋아”, “괜찮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방황하는 내 모습이 싫어서 쿨한 척을 했다. 그럼에도 관심이 고팠고 어느 무리엔가 소속되고 싶었다.


내게 먼저 다가와준 친구들이 너무 고마웠지만, 한편으론 그 거리가 버거웠다. 매일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나는 들을 너무나 사랑했고 선망했고 질투했다. 지금의 내 모습이 만족스러운데도 그들 앞에만 서면 다시 작아지는 것 같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 혼자만 다른 차원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에 대해 알게 된 만큼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새로운 인연이 많이 생겨났다. 책이나 글을 매개로 이어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들과의 관계에선 아무리 흑역사를 공유한다 하더라도 오래된 친구 사이 같은 맛 나 않았다. 관계의 깊고 얕음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결 자체가 달랐다. 새로 생긴 인연들과의 대화가 담화라면 오랜 친구들과의 대화는 수다다.


지금의 내게 수다는 일종의 감정 노동이었다. 친구들과 만나서 왁자지껄 노는 순간이 즐겁다가도 돌아서면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나를 채웠다. 나는 스트레스가 필요했다. 지금이 그런 시기였다. 긴장이 필요한 , 그냥 무언가 계속 눌러 담고 싶은 .




친구들과 절교를 하겠다는 마음은 아니다. 수다는 언제나 소중하니까. 다만 조금 거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들은 상당수의 사람이 “손절했네”와 같은 반응을 내보였다. 연인 사이라면야 “우리 시간 좀 갖자”는 말이 곧 이별일 수 있겠다만, 친구 관계에서까지 손절이라는 단어와 연결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일대일의 관계였다면 그냥 “음, 내가 요즘 좀 바빠서ㅠㅠ 나중에 시간 될 때 보자”라는 말로 이 시기를 조금 흘려보낼 수 있었겠지만, 이름 붙은 모임 안에서는 그게 좀 힘들었다. 그래서 단체 채팅방을 나오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그게 나를 지킬 수 있는 나름의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인간관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한다. 물 계속 흘러야 썩지 않듯 관계에도 환기가 필요하다. 나는 지금 이 상태를 “익절”한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손해를 보고 잘라낸 것이 아니라, 이익을 본 상태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으로.


 삶에 충실하다 보면 언젠가 완이 필요한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다시 열심히 이 관계를 매수하 될 테고. 그렇게 더 오랜 시간이 흐르면 이 관계는 어느새 우량주가 되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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