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문과형 인간과 이과형 인간으로 구분한다면 나는 그 경계선을 들락날락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고등학교에선 컴퓨터 정보처리를, 대학교에선 경제학을 전공했다. 학창 시절 국어와 수학을 좋아했고, 사회와 과학을 싫어했다. 지금은 개발자로 일하고 있고, 이전 직업은 출판사의 기획편집자였다. 지금 직업이 내 적성엔 훨씬 더 잘 맞는 일이지만, 누군가 “남는 시간에 코딩을 할래, 글을 쓸래?”라고 물으면 당연히 글을 쓰겠다.
문과형 인간과 이과형 인간의 차이는 직장 생활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 팀 혹은 회사 전체를 이루다 보니 각각의 특징이 점점 강화되는 듯하다. 출판사에서 일할 때와 개발자가 된 지금, 두 직장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을 꼽으라면 단연 ‘언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경험한 출판업계의 언어는 지나치게 정중했다. 출판사에서 일할 당시 나를 가장 괴롭게 했던 건 이메일을 쓰는 일이었다. 작가를 포함하여 각 서점 담당자, 디자이너, 인쇄사, 배본사 등등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아야 하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았는데, 이들과 주고받는 메일에는 늘 ‘쿠션어’가 존재했다. 예컨대 “주말 잘 보내셨나요?”,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즐거운 저녁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와 같은.
나는 예의 바른 문과형 인간들 사이에 잘못 떨어진 들짐승 같았다. 그들은 우아했고 나는 본능적이었다. 그들은 따뜻한 대화를 원했고, 나는 간결한 대화를 원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이메일을 쓸 때마다 궁금하지도 않은 상대의 안부를 왜 자꾸 물어야 하는지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혹시 지난 메일과 인사가 겹치진 않을까 보낸 메일함을 뒤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어느새 지나친 정중함은 내 피부가 되었다.
개발자로 전직을 하고 나니 메일의 쿠션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안녕하세요-용건-감사합니다”의 깔끔한 3단 구조, 내가 그토록 원하던 메일 쓰기였다. 군더더기 없이 필요한 말만 하는 곳, 이곳이 바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이구나 싶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만족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이미 내 손가락에는 정중함이 탑재되어 버린 뒤였다.
이번에는 메신저가 문제였다. 이모티콘 하나 없이, 그 흔한 ㅋㅋㅋ도 없이 차가운 팩트만이 오고 가는 대화방. 그 삭막함은 나를 숨 막히게 했다. 맞춤법 검사기라도 돌리고 메시지를 보내는 것인지 띄어쓰기는 기본이요, 마침표까지 찍어 보내는 정성이라니. 표정 없는 메시지에는 자동으로 미간을 찌푸린 얼굴이 달라붙었다.
‘읽씹’은 기본이었다. 심지어는 부서장님의 공지사항 전달도 모두가 읽씹이었다. 이게 그들의 암묵적인 룰인지 부서장님도 메시지를 확인했는지 묻지 않았다. 신입사원인 나만이 “넵 알겠습니다”를 썼다 지웠다 할 뿐이었다. 메신저의 최종 접속 시간으로 확인 여부를 체크하는 건지, 아니, 그마저도 눈치 보는 신입사원(바로 나)만 확인하는 것 같았다.
적성은 이과형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글을 쓰는 사람인지라 메시지를 보낼 때 굉장히 신중한 편이다. 어떤 단어를 사용해야 상대가 오해하지 않을지, 마침표 대신 찍을 느낌표는 한 개가 좋을지 두 개가 좋을지, 혹시 상대방도 내 메시지에서 찡그린 얼굴이 느껴지진 않을지, 걱정하고 또 걱정한다. 나는 이과형 인간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서 외로운 미어캣 한 마리가 되어 버렸다.
눈이 녹으면?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공식 질문 중 하나다. 다들 예상하겠지만 이 질문에 이과형 인간은 “물이 된다”, 문과형 인간은 “봄이 온다”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바닥 미끄럽겠다.” 아무래도 나는 문과도 이과도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