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일아트에 빠지게 된 것은 중학생 때였다. 엄마를 닮아 길고 예쁜 손톱은 훌륭한 도화지였다. 내 손톱은 아무리 길게 길러도 부러지지 않을 만큼 튼튼했고, 어떤 색의 매니큐어를 발라도 예쁘기만 했다. 손톱이 화려해질수록 아빠를 닮아 퉁퉁한 손에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길고 화려한 손톱에 모였다.
하나씩 사 모은 매니큐어는 어느덧 50개를 넘어서고 있었고 여기에 각종 네일아트 도구와 액세서리까지, 내 방 책상은 작은 네일숍의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틈틈이 인터넷에서 새로운 네일 디자인을 찾는 것이 일상의 행복이었고, 인터넷에서 본 그 디자인이 내 손톱 위에 실현될 때면 남다른 쾌감을 느끼곤 했었다.
그때는 그게 즐거웠다. 매일 같이 손톱을 도화지 삼아 새로운 그림을 그려내는 것도, 완성된 작품으로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것도, 모두 행복했다.
어느 날 친구가 물었다. 맨날 그렇게 네일아트를 바꾸는 게 귀찮지는 않으냐고. 그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인생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손톱이라도 마음대로 하면서 살아야지.
네일아트는 평범에도 한참 못 미치는 ‘나’라는 사람이 대중의 환심을 살 수 있는 가장 간편하고 저렴한 수단이었다. 셀프 네일아트였기에 저렴한 매니큐어 몇 개와 두 손만 있으면 모든 준비가 끝났다. 실패도 없었다. 지우고 다시 칠하면 그만이었으니까. 이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몇 시간을 투자했건, 나는 성공한 작품을 전시하고 쏟아지는 관심과 찬사에 취하면 그만인 일이었다.
네일아트에 빠져있을 당시 내 인생의 주도권은 내게 있지 않았다. 대단한 착각이었지만 상황이 나를 조종한다고 생각했다. 학교도, 전공도, 하다못해 내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책을 읽는지까지 모두 남들의 시선에 의해 결정되던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대로 살고 싶었던 나는, 손톱으로 남몰래 욕구를 표출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 역시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였다는 걸 꽤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지만.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고 했던가. 지금은 네일아트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되었다. 꼭 손톱이 아니어도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어느 순간부터.
50여 개에 달하던 매니큐어는 이제 대부분 굳어서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지만, 가끔 그때 찍어둔 손톱의 사진들을 꺼내보곤 한다. 예쁘긴 참 예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