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 싶지 않았던 인생
나에게 어머니는 목표이자 안타까움이다.
그 시대의 어머니와 할머니의 삶은 비슷하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자는 집안일을 하거나 아이를 돌보고 남편을 내조한다. 나의 어머니도 다르지 않은 삶이었다.
결혼 전에는 남동생의 뒷바라지와 가족을 위해 희생하였고, 결혼 후에는 남편과 아이를 위해 희생 아닌 희생을 하였다. 어머니는 여군이나 선생님이 꿈이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성격으로 보았을 때 너무 잘 맞는 직업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가끔 신세한탄 하듯 흘러가듯 내뱉는 어머니의 과거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너무 아팠다.
왜 그렇게까지 희생해야 했는지 궁금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살지 말자는 다짐을 어렴풋이 했었다.
자주 싸우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어머니 같은 인생은 살지 않겠다고, 아버지 같은 남자는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나의 목표가 되었던 것이다.
너희들 때문에 도망도 가지 못하고 참고 산다고 하는 어머니의 말에 내가 짐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를 버리고 어머니의 인생을 사셨으면 하는 바람과 정말 버리고 도망갈까 겁이 나는 마음이 늘 자리 잡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그런 생각을 하며 철이 일찍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나의 어머니는 강인한 분이셨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셨다. 절약하며 돈을 모아서 집을 마련하는 것이 꿈이셨다.
아버지의 사업 자금으로 사용되었지만 그 당시 집을 살 수 있을 만큼 모으셨다.
나의 절약 습관이 어머니에게서 배웠을지도 모른다.
집에서 할 수 있는 부업을 하면서 아끼고 모아 번듯한 집을 마련할 수 있는 돈을 모으셨다.
시장에 갈 때 손을 잡고 살아가야 할 지혜를 알려주셨고 나는 어머니 손잡고 시장에 가며 듣는 이야기가 즐거웠다. 어른이 되면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어 부모님이 더 이상 고생하지 않으면 가족들이 조금 더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더 이 악물고 자식들을 키워 내셨다.
어린 마음에 가난에 대한 불만을 품기도 했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함부로 일탈을 시도할 수 없었다.
우리가 잘못되면 어머니까지 잘못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기초생활수급자 생활을 해도 부끄럽지 않았다. 남은 가족이 함께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했다.
다행히 동생도 나쁜 길에 빠지지 않고 바르게 자라줬다.
하루에 일을 3개씩 해대는 어머니를 보며 늘 죄송한 마음이었다.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학원을 다니지 않고 스스로 공부하려고 노력했다.
비록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지만 부모님의 소원으로 대학을 진학했다. 아이 둘을 키우며 고생하셔서 재혼이라도 해보라며 말을 꺼내면 자식들 결혼할 때 흠이 된다며 거부하셨다.
어쩌면 미안하면서 안도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삶을 봤을 때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지만 새아버지라는 단어는 나에게 거부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몸을 혹사하고 자식들을 키워낸 어머니는 결국 아프셔서 일을 그만두었다.
그 후 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했지만 더 이상은 일을 나가시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들과 함께 살면서 손주를 봐주고 계시면서 평온하게 살고 계신다.
젊은 시절의 보상을 받고 계시는 거라면 더욱 평온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가끔 자식들에게 해준 것이 없어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실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지금 이렇게 자라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어머니의 희생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이제라도 마음 편하게 즐겁게 사셨으면 한다.
내가 부자가 되고 싶은 이유에는 부모의 행복도 포함되어 있다.
나의 어머니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식들을 포기하지 않고 키워 내셨다.
그 마음에 감사하고 보답해야 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라고 생각했고 부모님의 노후를 편안하게 보내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지금의 내가 삶을 버티고 살아온 것은 나의 어머니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