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감정 중 왜 '화'는 숨기기에 급급하나

감정에 관하여

by 책사이애

무수한 감정 중 하나, '화'


여간해서 화가 나지 않는다. 화를 참는 것이 아니라 나지 않는 것이다. 대부분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로 내 안에서 퉁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이해심이 많다거나 관대한 것 하고는 다른 성질이다. 한 끗으로 전혀 다른 온도를 띤다. 바로 '무관심'이다. 상대의 '그럴 만한 이유'에는 관심이 없다. 관계에서 상대의 행동에 관심이 없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나는 인간관계에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겠다. 결국 그런 무관심은 살아오는 동안 퇴적된 부정적인 정서의 자연스러운 표출이다. 함부로 대하는 상대에게 저항할 힘이 없거나 방법을 모를 때, 혹은 소심한 저항이 더 큰 화를 일으켰던 경험이 누적되어 어느 순간 상대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하는 척 무심히 넘어가는 것으로 무수한 충돌을 피해왔던 것이다.


사실 그렇게 살아오며 그것이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종래에는 잘 피할 수 있는 스킬, 이를테면 지금 상대의 행동이 불편할 것 같은 상황이 오면 그것에 대한 감각을 애써 무시한다. 가장 먼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피하는 것이다. 해결이 아니라 피하는 것으로, 마주하면서 나의 감정과 생각을 명확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서 전해오는 불쾌함을 그럴 수 있다는 서툰 이해심으로 둔갑시켜 곧바로 감정을 처리해 버린다. 그 감정을 정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스스로에게 느끼는 고양감도 있다. 이 정도로는 나에게 타격을 줄 수 없다! 자아도취적 회복탄력성에 가까운 빠른 감정처리는 결국 상대에 대한 무시와 관계에 대한 회피에 가깝다. 그나마 가까운 사람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나는 감정을 토로하곤 한다.


특히나 아이에게 나를 설명하는 일이, 나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일에 열성을 다한다. 아이의 행동 자체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으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점과 그에 따른 나의 감정을 최대한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이것은 단순하게 화를 내는 것하고 다른 성질을 띤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이가 하는 행동이나 말, 태도나 생각이 지금 내 자리에서 불편하고 또 불안하게 다가오는 경우들이 있다. 물론 아이 스스로 그것들을 잘 분간하고 또 해결해 나가겠지만 당장, 부모인 나의 입장에서 걱정이 될 때가 많다. 다른 사람에게는 일지 않는 걱정이 유독 아이에게는 인다. 아이와 나는 일종의 관계다. 사람 대 사람인 것이다. 어린이와 어른, 부모와 자식과 같은 하나의 상징을 띠는 그런 관계이기보다 세상사 모든 사물에도 관계가 있듯이 '너'와 '나'로의 관계가 분명하게 존재한다. 그런 관계 안에서 그저 내가 키우고 있는 자식 또는 나의 딸, 그것도 아니면 식구라는 이름으로 특별해지기 보다 건강하게 마음이 이어지는 관계이고 싶은 대상이자 존재이다.


대부분의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내가 유일하게 관심이 가는 대상이 딸인 것이다. (이런 말이 납작하게 '니 자식이니까 그렇지'라는 말로 뭉뚱그려지는 게 아쉽다) 관계를 떠올리고, 관계 맺기에 마음을 쏟다 보면 늘 그 끝에 아이가 있다. 아이는 내가 유일하게 '화'를 내는 대상이기도 하다. 단순한 감정의 폭발, 물론 이따금 건강하지 못하게 감정을 분출할 때도 있다. 그렇게 쏟긴 감정에 대해서는 거듭 사과를 하고 맥락을 설명해 준다. 이런 후처리도 다른 이들에게는 없다. 여기서 말하는 '화'는 나의 감정 표현이다.


무수한 감정 중 하나인 화를 나는 왜 숨기고 사나, 슬픔이나 기쁨, 불안이나 걱정처럼 하나의 감정인데 유독 화는 숨기고 살았다. 나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감정 중 하나로 건강하게 그것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의 중요함을 알고 난 뒤로 아이에게 건강하게 화를 내려고 노력한다. 물론, 아이는 당장 엄마의 표정이 딱딱해지거나 목소리가 고압적으로 느껴져 겁은 먹겠지만 결국 그런 감정에 이유를 붙여 설명하고 대화하다 보면 어느새 각자가 느낀 감정에 이름이 붙게 된다. 이름표가 붙은 감정은 단순하게 '화'라는 말로만 정리되지 않는다. 도움, 조언, 진심, 애정 등 대화의 끝에서 만나게 되는 감정은 결국 화에서 시작된 감정들이었다. 폭압적이고 일방적인, 고압적이고 통제적인 화가 아니라 분명하게 느껴지는 내 안의 감정이다. 그런 감정을 피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름표를 붙이기 위해 긴 시간 대화하고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꺼내 놓다 보면 분명 매듭지어지는 지점이 있다. 아이와의 대화는 매듭이 잘 지어진다. 애초에 감정적으로 화를 낸 게 아니라 분명히 알려주고 싶은 감정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잘 전달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상대에 대한 나의 애정이자 진심이다.


2200자, 원고지 11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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