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에서 3시간으로
인생이 그렇듯 달리기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인생이 그렇듯 달리기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러닝 앱에서 지원하는 '30분 달리기 플랜'으로 8주간, 주 3회 플랜에 따랐다. 그때만 해도 그저 30분을 쉬지 않고 달리는 것에 의의를 둔 바, 마라톤 따위를 염두에 두거나 페이스, 고도, 케이던스나 심박수 따위는 외계어처럼 의미 없는 단어들로 치부했다. 됐고, 그냥 뛰는 것! 그렇게 1분 달리고 3분 걷는 식으로, 물색없이 방긋거리며 선생님 뒤를 졸졸 따라가는 유치원생처럼 앱 보이스에 따라 충실하게 몸을 움직였다.
8주는 눈 깜짝할 새 지나갔고, 정확하게는 7주가 넘어서면서부터 앱 보이스는 필요 없게 되었다. '정말 멋집니다!'와 같은 응원 없이도 30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고작 7주 만에 달라진 것이다. 페이스가 뭐야? 됐고, 그냥 뛰자!였던 내가 거리 조절에서부터 심박수에 집중해 순간순간 상태를 점검하며 누적 고도를 체크하고 기록을 챙기기 시작한 것이다. 별것 아닌 그 전환은 달리고 싶은 삶에서 달리는 삶으로의 대전환이었다.
그때부터 달리기는 온전히 삶 속으로 들어왔다. 그 시기에 여러 명의 사람들과 러닝 크루 활동도 했다. 나의 달리기를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고, 서로의 기록에 하트 스티커를 붙여주고 응원을 나누면서 이전보다 더 깊숙이 달리기가 삶으로 들어왔다. 12월, 러닝 크루를 시작하며 100일 동안 열심히 달려 넉 달 후 5km 마라톤에 다같이 참여하자며 동요했다. 단순하게 그냥 뛰기만 했던 달리기가 목적과 방향을 만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 30분을 쉬지 않고 달리는 것에 의미를 두고 열심히 뛰었던 것처럼 마라톤 참여라는 조금 더 큰 덩어리의 목표가 생기니 달리는 시간이나 기록이 전과 다르게 다가왔다. 목적이 생긴 후로는 꽤 계획적으로 훈련을 할 수 있었다. 달리는 시간을 확보하고, 주당 거리 및 페이스를 균일하게 맞추는 것에 심혈을 기울였다. 늘 같은 거리를 같은 페이스로 달리기 보다 인터벌의 확장 개념으로 매일 조금씩 다르게 훈련했다. 3km를 페이스 6분 15초 대로 달리기, 1km를 숨차게 달리고 남은 2km를 천천히 달리기, 5km를 숨이 전혀 차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달리기,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매일 1km 씩 늘려가며 달리기, 오르막 달리기 등 러닝 앱의 자유 달리기 기능을 이용하며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훈련했다.
12월 러닝 크루 활동을 시작하고 꼬박 100일이 지날 무렵 10km 마라톤에 참여하게 되었다. 정말 많은 정보가 범람했다. 러닝에 관련된 정보검색이 누적되니 어느새 핸드폰 알고리즘은 러닝에 관한 영상이나 광고로 점철되었다. 관련 영상은 저마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러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대부분 개인적인 경험이나 의견에 치우쳐 있었다. 각기 다른 정보들을 하나로 귀결 시키는 일이 어려웠고, 100일간 열심히 훈련한 나의 경험을 믿어보기로 했다. 배 번호와 티셔츠, 마라톤 관련 정보 책자가 택배로 도착했다. 책자를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정독하며 대회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즐겼다. 공식적인 기록을 갖게 된다는 사실이 고무적이었고, 취미처럼 달리기를 하던 중년의 아줌마인 내가 뭔가 거창한 일을 하는 것처럼 마음이 들떴다.
결과는, 완주에는 성공했지만 기록이 아쉬웠다. 훈련 때도 기록한 적 없는 페이스를 목표로 열심히 달렸다. 흔히 말해 '뽕'이라고, 막상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게 되면 훈련 때보다 기량이 올라가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경우가 많다는 말을 들었기에 나름대로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기록은 나오지 않았고, 많은 사람이 좁은 레이스에서 달려야 하는 상황이 길어지면서 내 페이스대로 달리지 못해 무척 아쉬웠다. 하지만 이 또한 첫 참여로 얻은 소득 중 하나였다. 구간을 미리 점검해 전체적인 페이스를 조망하는 것이 유리함을, 3km 넘어가면서부터는 조금 숨이 찰 정도로 속도를 올려주고, 7km 이후에는 페이스를 유지해 마지막 9km에서부터 젖먹던 힘까지 내줘야겠다는 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마라톤 참여 이후 기록은 크게 향상되었다. 그 즈음부터 매일 달리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말이 쉬워 매일달리기지 어떤 상황에서도 매일 달리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쉽지 않은 그 일을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뿌듯하다. 결국 이 뿌듯함을 위해 나는 달리는구나 싶을 만큼 달리기의 큰 원동력이다. 누가 뭐래도, 어떤 일이 있어도 나의 삶을 달리는 레이스 위에 올려 둘 수 있다는 건 큰 기쁨이다. 내가 건강하다는 사실을, 아무리 바쁘고 지쳐도 나를 위해 시간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외부의 동기나 조력 없이도 주체적으로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매 순간 깨닫는 기쁨이자 환희다.
매일 달리기 65일, 30분만 쉬지 않고 달리고 싶던 작은 소망은 그날부터 225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쉬지 않고' 레이스 위에서 나는 움직이게 해주고 있다. 레이스에 올라서면 멈추는 일은 없다. 10km, 15km도 단 한 번도 멈춘 적은 없다. 숨이 차면 속도를 줄일지언정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멈추지 않고 달리는 나에게 또 다른 소망이 생겼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마라톤 풀코스를 달려보기로 한다. 1분을 뛰면서 '나는 달리기는 안되겠어'라고 말했던 내가 240분(대부분의 풀코스 참여자의 기록)을 달리기 위한 또 다른 계획을 세운다.
인생이 그렇듯 달리기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30분을 넘어 3시간을 향해 계획에 없던 달리기를 지금 다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