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진짜 이유
달리기를 왜 시작했냐는 질문을 꽤 진지하게 받았다. 생전 운동이랑은 담쌓고 지냈던 내가 갑자기 무슨 계기로 운동을, 그것도 달리기를 시작했는지 궁금해했다. 이 질문을 전후로도 종종 받았다. 상대에 따라 적절하게 대답하며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어떤 날은 재미있어서라고 대답했고, 또 어떤 날은 기분이 좋아서라고 대답했다. 누군가에겐 쉰을 향해 가는 나이를 무시하기가 어려워 체력을 키워볼 요량으로 시작했다고도 하고, 달리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훈련한다며 우스갯소리로 대답해 주곤 했다. 정작 스스로에게는 진지하게 묻지 않았다. 기껏해야 오늘은 달릴 거야? 말 거야? 정도로 단순하게 일상에서 치러내는 하나의 행위로 의식했다. 그러면서 매일 같이 시나브로 떠오르길, 달리기를 하는 이유는 달리기 자체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달리기를 시작한 후 달라진 게 참 많다. 가장 먼저 온몸에 근육이 도드라지게 드러나고 체중이 줄었다. 달리기만 하면 다 그렇게 되나?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달리기에 필요한 근육을 단련 시키기 위해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하고 안전하게 달리기 위해 체중을 감량했다. 달리기를 하면 체중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달리고 싶어 체중을 감량한다는 말이 되겠다. 하체를 비롯 코어와 척추까지, 몸 전반의 근력을 최대한 촘촘하게 다져준다. 그것은 달리기를 위한 기초 체력 단련으로 하루 10분 내외 짧은 시간만으로도 충분하다. 달리기도, 근력운동도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일상 속에서 조금씩, 야금야금 만들어가야 한다.
달리기를 시작하면 초반에는 식욕이 솟는다. 그맘때 먹은 고기 양은 평생 먹은 양보다 많을 것이다. 하루도 안 빠지고 고기를 먹었다. 몸에서 필요한 영양소를 알아서 가져간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쉐이크나 보조 영양제가 아닌 두툼한 고기를 종류별로 배부르게 먹었다. 대신 야채를 고기의 양만큼 같이 먹었다. 식욕이 폭발하는 것도 잠시다. 체중이 늘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던 시기를 보내고 얼마 안 가 공복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때부터 체중이 줄어드는 게 육안으로도 확실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체중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했다. 결과적으로는 달리기를 해서 체중이 줄었다로 정리가 되겠지만 달리는 시간 속에서 나는 체중을 줄이는 것에 관심을 기울였다. 솟는 식욕을 누르기 어려워 푸짐하게 먹었지만 다음 날 아침 공복으로 4~5km를 달리며 많은 땀을 흘렸다. 저녁이 되면 근력운동을 필수로 해줬다. 맥주를 마신 상태에서 (매일 저녁 맥주 1~2캔을 마신다) 요가 매트를 펴놓고, 이러다가 창자가 끊어지는 게 아닌가 걱정이 들 때까지 복근에 자극을 주고, 영원히 걸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하체 운동을 했다. 1~2분을 버티던 플랭크를 3분 이상 버티게 되었고, 2~3분이면 허벅지가 끊어질 것 같은 벽스쿼트도 5분 이상 버틸 수 있게 되었다. 런지가 달리기에 가장 좋은 운동이라기에 종류별로 꾸준히 했고, 중심 잡고 버티는 동작들을 쉬지 않고 했다.
먹는 양이 많으니 운동량이 아무리 많아도 체중은 쉽게 빠지지 않았다. 공복 달리기를 할 때도 인터벌로 강도를 유념해 자가적으로 열량을 태우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하루는 천천히 길게 달리고, 하루는 빠르게 짧은 거리를 달리고. 심박수를 체감으로 체크하고 (워치를 쓰지 않는다)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달렸다. 그러다가 체중이 눈에 띄게 감량된 건 마라톤 준비를 위한 음식량 조절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배부르게 잘 먹고 운동을 많이 하자 마인드였다면 마라톤을 준비하던 기간 동안 저녁에 먹는 음식량을 눈에 띄게 줄인 것과 더 많은 시간 달리는 것으로 체중을 줄였다. 달리기를 이렇게 하는데도 살이 안 빠지나? 의문인 분들은 먹는 음식량을 체크해 봐야 한다. 1~20km를 하루도 쉬지 않고 달린다고 해도 매일 같은 거리, 같은 속도, 같은 방식으로 하는 달리기는 몸에 자극을 주지 못한다(고 알고 있다. 다른 의견들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몸은 꽤 영리해서 금세 적응한다. 주인이 매일 같은 방식으로 달리는 걸 몸은 잘 알고 있다. 페이스 6분 30초로 꾸준히 달린다면 몸은 딱 그만큼 에너지를 쓰며 달리기를 하도록 도와주지만 그 이상을 쓰려고 들지 않는다. 그래서 몸을 가지고 놀아야 한다. 어제는 6분 30초대로 달려놓고는 오늘은 왜 5분 20초 대로 달리는 거지? 어제는 5분 50초 대로 달려놓고 오늘은 왜 7분대로 달리는 거야? 한 번의 레이스에서는 꾸준한 페이스로 구간을 체크해야 하지만, 매일매일은 조금씩 변화를 줘야 한다. 이 지점에서 체력이 꽤 많이 올라왔다. 오르막을 한번 달리고 나면 다음날은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진다. 평지쯤이야 얼마든지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힘든 달리기를 하고 난 후 몸은 조금씩 그것에 맞춰간다.
몸이 가벼워진 만큼 근력이 손실되고 체력이 달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변화하는 몸이 그것대로 또 적응을 꾀하기 때문이다. 매일 달리기 70일이 넘은 지금은 체지방률 20%, 근육량 38kg(골격근량 22kg)으로 인바디(가정)를 측정한 이래 가장 낮은 체지방과 같은 높은 근육량을 기록하고 있다. 달리기로 단련이 된 수치가 아니라 달리기를 하기 위해 치러내는 일련의 행위들이 만들어주는 숫자들이다.
지금 나에게 달리기를 왜 하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체중 감량도, 근육량(체력) 증가도, 재미도, 마라톤 참여나 기록도 아니다. 달리기를 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에서 스스로에 대한 애정이 차오른다고 말해주고 싶다. 달리기는 달리기 자체에서 얻는 기쁨이 크지 않다. 달리고 난 후의 내가 얼마나 멋지고 대견한지 달리는 순간에는 알지 못한다. 달리는 건 정말 단순한 행위이다. 하지만 그것을 하기 위해 하는 일련의 행위와 마인드셋, 변화를 꿈꾸고 꾀하고 실천하는 모든 순간들이 결국은 나를 건사하고 돌보고 애정하고 인정해 주는 일이라는 걸 매일 달리는 지금 명징하게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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