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에 관하여
11살의 아이가 암벽등반을 한다. 얼굴이 말간 여자 아이다. 티브이 속 아이는 제 몸피보다 큰 남자 어른에게 자세를 가르쳐 주기도 한다. 검은 머리카락을 질끈 묶고, 모양이 제각각인 돌을 잡고 오르고 또 오른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암벽등반, 클라이밍이라고 해서 두 손과 두 발을 이용해 가파른 벽을 기어오르는 스포츠를 동경하게 되었다. 정확하게 언제부터였는지, 어떤 이유인지는 알 수 없다. 몸뚱어리 하나만 가지고 정상을 향해 기어오른다는 행위 자체가 주는 희열이 있었다. 몇 해 전부터는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어 날렵한 선수들이 저마다의 기량을 가린다. 직선으로 스파이더처럼 빠르게 기어올라가 버튼을 누르면 이기는 경기도 있고, 출전한 선수 대부분이 떨어지고 마는 난해한 구간에서 영리하게 몸을 쓰는 선수들이 완벽하게 기어올라 이기는 경기도 있다. 빠르게 오르든, 마의 구간을 오르든 나에게는 '오른다'는 것에서 주는 희열이 분명히 존재한다.
나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겨 티브이를 골몰히 보다가 말고 말이 튀어나왔다. "저거, 내 버킷리스트야. 죽기 전에, 나도 언젠가는 할 거야. 언젠가는." 누가 들으라고 한 말이 아닌데 모여 앉아있던 딸아이와 남편이 한마디 거든다. "엄마, 엄마가 저걸 어떻게 해! 저거 생각보다 어려워!" 지난 겨울 방학 때 키자니아라고 해서 어린 친구들이 직업 체험하는 곳에 방문해 로프를 달고 외벽을 기어올라가 보았던 아이는 그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음을 몇 번 이야기했다. "지금은 못하지. 지금은. 그런데 언젠가 할 거야. 엄마도 언젠가는 할 수 있어!" 아이와 장난스레 투닥거리고 있으니 마주 앉아 라면을 먹던 남편이 말한다. "해봐! 안되는 게 어디 있어? 하고 싶은 거 다 해." 뭉근한 고마움이 피어오른다. 그것이 왜 나에게 버킷리스트인가에 대해 이야길 이었다.
오래전부터 다한증이라 해서 신체의 특정 부위에서 땀이 많이 나는 증상을 겪고 있다. 대부분이 그렇듯 손과 발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땀이 흐르는데 이 증상을 처음 발견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다. 친구와 버스를 타고 가는데 손잡이를 잡은 나의 손에서 물처럼 줄줄 흐르는 땀을 보자 친구가 놀라 황급히 자리를 양보해 주었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다. 그때부터 내가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어렴풋하게 알게 되었다. 인지한 이후부터의 삶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불편했고, 불쾌했고, 불안했다. 시험지가 젖어 찢어지는 일, 컴퓨터 자격증 실기시험에서 자판에 물이 고여 지켜보던 선생님이 화들짝 놀랐던 일, 밀가루 반죽이나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클레이 찰흙을 만지면 물감처럼 손바닥에 녹아 스며드는 일, 종이를 손에 쥐고 발표를 하다 보면 그 부분부터 천천히 젖어 들어가던 일, 친구들과 손을 잡기가 힘들어 놀이 때마다 하기 싫다며 손사래를 치던 일 등 어렸을 때부터 중년이 된 지금까지 나를 주눅 들게 하는 고충이다. 오랜 세월 지속된 증상과 그로 인한 주눅까지 익숙해졌을 법도 한데 여전히 다한증 증상을 남들이 알아차릴까 불안한 마음은 쉬이 나아지질 않는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바뀌었다. 아이가 어렸을 때, 한 서너 살쯤이 되었을까? 손을 잡고 길을 걸어가는데 한여름,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를 만큼 더운 날이었다. 손을 잡지 않으면 아이는 쉽게 넘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했고, 맞잡은 두 손으로 고여든 땀은 이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작은 아이가 뭣도 모르고 잡고 있는 손에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일었다. 아무리 작은 아이여도 이렇게 축축한 손을 잡고 있기가 어려울 텐데 엄마라서 거부하지도 못하고 저는 얼마나 찝찝할까? 그런 생각이 들자 못내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엄마가 손에 땀이 많이 나는 병이 있어. 아프거나 심각한 건 아닌데 조금 불편하기는 해." 작고 작은 아이에게 변명하듯 불편함을 설명했고, 그것을 이야기하는 엄마의 음성이 달라졌다고 느낀 딸은 기다렸다는 듯 한마디 붙인다. "괜찮아.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아이는 지금 자신이 내뱉은 그 말이 얼마나 의미 있는 말인지 미처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시간 속 웅크리고 주눅 들고 괴로워했던 나의 슬픔에 양동이 째로 시원한 물 한 바가지를 쏟아부어 눅진한 때가 단번에 씻겨 나가는, 세상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음을 아이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런 아이가 커서 어느새 10살이 되었고, 그때와는 다르게 엄마는 절대 못할 거라며 이죽거린다. 그것에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 못할게 뭐냐고, 할 수 있다고 하나밖에 없는 아내인 나를 거들어준다. 자연스럽게 버킷리스트 이야기가 나와 하나 더 있다 말하니 남편이 뭐냐고 묻는다. "난 평생 버킷리스트 같은 거 없이 살았어. 그게 뭐가 중요한가? 그냥 하고 싶은 걸 하면 되지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 하고 싶은 게 버킷리스트가 아니라 할 수 없는 게 버킷리스트더라고. 그래서 사람들은 할 수 없는걸 할 수 있게 만들고 싶어서 그런 리스트를 만들어보는 거더라고. 그때 알았어. 나의 버킷 리스트를. 내가 할 수 없는데 하고 싶은 거. 그게 바로 클라이밍이었던 거야. 그런데 최근 하나가 더 생겼어. 뉴욕 마라톤 풀코스!"
올 초 기안84가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뉴욕 마라톤에 참가한 영상을 본 직후 내 안에서 뭔가가 팡팡 터졌다. 더 늙기 전에, 더 달릴 수 있을 때 저길 달려야겠어! 말릴새도 없이, 두 번 고민할 것 없이 입 밖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나, 저기 가야겠어!" 마라톤 풀코스라니, 그때만 해도 겨우 한 두 번, 10km를 뛰어내던 시기였기에 풀코스라니, 더군다나 뉴욕이라니! 맹랑한 상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의 허무맹랑한 한 마디에 곁에 있던 남편이 얼른 거든다. "좋은 생각이야! 그런 목표 좋아. 넌 할 수 있을 거야!" 유행 지난 노래 가사처럼 넌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남편의 한마디에 불현듯 지금 이 말이 현실이 될 것 같은 기대가 온몸을 감쌌다. 클라이밍과 뉴욕 마라톤, 두 가지 모두 스포츠라는 것이 의아하기도 하지만 어찌 되었든 나에게 이 두 가지는 할 수 없으면서 할 수 있는 버킷리스트가 되었다. 나이 앞자리 수가 '4'일 때 둘 다 이뤄내보고 싶다. 그것은 서너 살의 아이가 엄마의 축축한 손이 아무렇지 않다고 말해 30년 동안 묵힌 슬픔을 잘게 쪼개어 주었듯, 지금 남편의 응원과 지지가 불가능한 것을 꿈꾸게 하고 또 용기 내어 이뤄내는 삶을, 혹여 이뤄내지 못했다 해도 그것에서 느꼈던 존중과 믿음은 앞으로의 내 삶에서 무수한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 줄 것만 같다.
3200자, 16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