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을 위해
동생이 러닝을 시작했다며, 준비운동에 관해 물어볼 게 있어 연락을 해왔다. 작년부터 가족 모임 때마다 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거실에 모여 담소를 나누면서도 각자의 몸을 비틀어가며 틈새 운동을 한다. 삼십 대까지만 해도 가족 모임 날은 뒷산이나, 가까운 학교 운동장으로 가서 가족별 팀대항으로 달리기나 제기차기, 오래 매달리기나 배드민턴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대로 경기를 하며 승부를 가렸다. 각출한 1~2만 원의 돈을 상금으로 걸고 나름대로 진지하게 임했다. 남편들까지 합세하면 8명, 친정엄마는 대게 심판을 보고, 아이들은 옆에서 응원을 하기도, 훼방을 놓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평생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나이대가 '4' 자로 바뀌는 순간부터는 아침 대항은 고사하고 늦은 밤까지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드는 시간도 세월의 뒤안길로 밀려났다.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다. 마음은 그때에서 변함없지만 나이를 무시하기는 힘들었다.
그런 사십 대 중반의 동생이 러닝을 시작했다는 소식은 무척이나 반가웠다. 아닌 게 아니라 두 아이의 출산, 쉼 없는 직장 생활로 몸과 마음이 지친 동생은 건강을 챙기는 것에 신경을 쓰지 못했고, 20kg 가까운 체중이 불어난 상태였다. 러닝 시 체중으로 인한 관절 부상이나 통증이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 같은 경우만 해도 곧바로 러닝을 시작한 건 아니었다. 요가를 시작하면서 근력이 붙기 시작하니 체지방률을 낮추고 근육량을 늘리고 싶다는 마음에 가볍게 시작한 운동이 러닝이었다. 첫 러닝을 시작할 때 요가로 인한 얼마간의 근력은 있는 상태였다. 요가와 러닝을 병행하니 생각보다 빠르게 근력이 붙었고, 공복 러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체중이 눈에 띄게 줄어든 케이스다. 동생과 같이 체중 조절을 위한 러닝인 경우 기초체력과 기본 근력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아 조심할 것들이 더러 있기도 하다.
동생은 어떤 준비운동을 해야 하냐며 조언을 구해왔다. 메시지에 지금은 따로 준비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답장을 보내고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짤막한 메시지로 보낸 나의 답변이 준비운동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될까 염려되었다. 또 그것을 묻는 동생의 러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했다. 아니나 다를까 동생은 러닝 10일차에 장딴지 통증이 생겼다며 자신의 러닝 방법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노파심이었다.
평생, 아니 초등학생 때를 제외하고 제대로 달려 본 적이 얼마나 될까? 눈앞에서 버스가 출발하려 할 때, 휴게소 화장실 칸에 전화기를 두고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와 같이 비상 상황이 아니면 굳이 달리기를 선택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나의 몸을 위해 레이스 위로 몸뚱어리를 올려 규칙적으로 발을 구르며 호흡에 신경을 써 천천히 달리는 행위를 해 본 적이 있기나 한가 말이다. 어쩌면 태어나 처음 제대로 쓰는 근육에 온몸이 놀랐음이 분명하지 않을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도 나오지 않나, 달리기를 하게 되면 몸의 근육이 전부 재배치된다고. 장딴지가 아니라 어디가 아파도 아플 것이다.
자신의 러닝 방법이 잘못된 것 같다는 동생에게 '러닝 방법'이 어떤 법칙처럼 정해져 있는 건 아니라고 대답해 주었다. 나 또한 처음 러닝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전문가들의 의견과, 오랜 시간 달리기를 꾸준하게 했던 프로 선수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었다. 달리기에 막 재미를 들였던 시기다. 연예인 러너들을 비롯, 주말께 전국에서 치러지는 마라톤 대회가 끝나면 그로부터 하루 이틀은 알고리즘이 온통 러너들의 인증 사진과 전문가들의 인터뷰, 강의 등 러닝 정보로 점철되었다. 그때만 해도 러닝을 좀 더 체계적으로 하고 싶다는 마음에 부지런히 검색하고, 차로 이동할 때에도 강의나 인터뷰 영상을 틀어 놓고, 소개되는 책을 읽으며 러닝 용어도 공부했다. 그렇게 했던 시간들이 무용했다는 말은 아니다. 덕분에 나의 몸을, 달리기를, 달리는 삶을 차츰 명징하게 나의 화폭에 그려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정답 같았던 방식과 조언은 다음 날이면 '절대 그렇게 달리면 안 됩니다!'로 뒤바뀌어 있었다. 어제는 맞았는데 오늘은 틀린 것이다. 중요했던 정보들이 전복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나만의 방법, 나에게 최적화된 러닝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다짐이 일었다.
꼭 하나의 방법, 딱 하나만 이야기 하라면 나는 거두절미 '집중'이다.
이제 와 생각하면 그때만큼 나의 몸에 집중해 본 적이 또 있나 싶다. 러닝 앱으로 8주간 30분 달리기 플랜으로 처음 러닝을 시작한 것이 크게 도움 되었다. 인터벌 러닝으로 1분을 달리고 3분을 걷는 식으로 호흡을 조절할 수 있었고, 앱이 구동되는 동안 시간을 체크해 줌과 동시에 다양한 러닝 정보를 끊임없이 읊조리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 러닝을 공부하듯 하루하루 임했다. 달리는 모습을 떠올리며 바람을 가르는 순간을 즐기라 응원해 주는 목소리가 쉼 없이 흘러나왔다.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어떤 부위에 힘이 들어가는지, 운동화 속의 발가락들 중 어떤 발가락에 힘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지, 상체가 얼마큼 돌아가고 팔은 얼마큼 구부리고 있는지 수시로 체크했다. 주먹을 둥글게 말아도 보고, 손바닥을 펼쳐도 보며 러닝 하는 순간만큼은 온몸에 신경을 쓰고 보이지 않는 몸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를 머릿속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몸 구석구석에 신경을 기울이면 경미한 통증을 비롯, 이유 없이 뭉쳐지는 부위와 자극을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하루는, 러닝 후에 어깨가 아팠다. 러닝 자세에서 어깨가 아프다는 건 어떤 문제에서 비롯되었을까? 다음 날 러닝 때 알 수 있었다. 평소에도 경직된 자세로 책을 읽고 작업을 하다 보니 어깨 통증이 늘 있었다. 러닝을 할 때도 무의식중에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후 의식적으로 어깨를 털어가며 러닝을 했고, 나중에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이 명징하게 느껴졌다. 적어도 러닝을 할 때는 어깨를 가볍게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러닝 5개월 즈음 경미하게 무릎 통증이 일었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러너들의 고질병, 무릎 부상으로 이어지겠구나. 덜컥 겁이 났다. 러닝을 멈추는 것으로 통증을 저지 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날부터 집중적으로 무릎을 감싸고 있는 허벅지를 중심으로 하체 운동에 매진했다. 하체 운동을 시작하면서 눈에 띄게 근육이 많이 붙었다. 러닝 후 샤워할 때면 땅땅 해진 다리가 뿌듯해 부러 힘을 줘보면서 자족하기도 했다. 하체 운동에 올인하고 러닝 페이스를 조절하니 무릎 통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러닝 240일째, 그 이후로 무릎이 아픈 적은 없었다.
매일 달리는 요즘은 자잘한 통증이나 근육 당김은 거의 없다. 이따금 몸의 컨디션에 따라 다리가 무겁다거나, 숨이 평소보다 더 차오른다거나 하는 컨디션 문제는 있지만 러닝에 따른 몸의 통증이나 부상은 없다. 하루 30분 러닝을 위해 달리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근력 운동에 신경을 쓴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2~3분의 시간 동안에도 다리를 번갈아 앞뒤로 뻗어 버티는 동장으로 근육을 자극하고, 양치를 할 때도 뒤꿈치를 들고 반런지 자세로 앞 허벅지를 자극한다. 자기 전 벽에 상체를 기대앉아 벽스쿼트를 5~6분간 지속 시키고 러닝 바로 직전에는 두 발을 함께 높이 뛰어오르는 동작을 여러 번 해서 무게 하중에 시동을 걸어준다. 러닝을 하기 직전에 하는 준비운동은 사실 그것이 전부다. 하지만 러닝을 하기 위해 매일 근력운동을 해주는 지금으로서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 동안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겨우 30분, 그 30분을 뛰기 위해 온 하루를 나의 몸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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