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육아,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아이가 태어나고 산후조리원에서 2주간 머물렀다. 짧은 케어가 끝나고 퇴원하는 날 강당에 모인 산모들에게 조리원 실장님이 말씀하셨다. “어머님들 집에 가시면 아기들한테 말을 많이 걸어주세요. 그게 아이들한테 가장 좋아요.” 그저 선배엄마의 조언 정도였으리라. 엄마가 된지 꼬박 2주, 뭘 알았겠는가. 아기를 안는 방법도 몰라 쩔쩔매던 그때 선배엄마의 조언은 법과 다름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그 말이 메아리처럼 울렸다. ‘말을 걸어줘야 한다고!’
아닌게 아니라 말수가 적기로 둘째가라면 서운한 나였다. 하루 온종일 누군가와 같이 있어도 한 두마디 겨우 내뱉을까 말까. 할말만 하자 주의다. 그런 나에게 말을, 그것도 많이 걸어주라니. 숙제처럼 떠안은 짐은 그 날 이후 나의 삶을 차츰 변화시켰다.
햇빛이 한정없이 들어차는 거실 한가운데 말간 아이가 누워있다. 신기하기 짝이 없는 존재가 우리집으로 들어왔다. 할 줄 아는거라곤 그저 버둥거리며 우는 거 말고는 없어보인다. 조리원에서 배운것처럼 기저귀를 갈 때 “아이고, 예뻐라. 응가 했쪄요? 어쩜 이렇게 응가도 예쁠까!”를 연발한다. 분유 한통을 그저 먹기만 했을 뿐인데도 “세상에나! 어쩜 먹는 모습도 이렇게 예쁠까!”를 쉼없이 내뱉었다. 한마디 내뱉을때마다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아이가 태어난다고 해서 곧바로 엄마가 되지는 않으니까. 마인드셋부터 행동거지까지. 엄마는 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
출산 후 한달 간, 친정엄마께서 애바라지를 해주셨다. 주말이면 뒤도 안 돌아보고 현관을 나서는 엄마의 뒷모습을 어찌나 원망했던지. 평일 내내 우는 아이 달래기 에서부터 내 식사며, 아기 옷 손빨래며 당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돌봐주셨지만 금요일 저녁만 되면 “알라 잘 봐라.”하고는 뒤도 안돌아보고 매정히 돌아섰다.
주말 이틀 온전히 나와 아이 둘 뿐이다. (남편은 근무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햇살이 그득 들어차 포근하고 고즈넉했던 거실이 한순간에 뒤바뀐다. 첩첩산중, 암흑뿐인 산 중 깊디 깊은 곳에 짐승같은 아이와 단 둘이 내버려진 것 같은 고적함이었다.
쌕쌕 숨만 쉴 줄 아는 아이는 잠시만 한눈 팔아도 금세 산짐승이 낚아채 가버릴것만 같았고, 우리를 도와줄 사람이라곤 전무한. 그렇게 예쁜 아기와 단 둘이 있는데 뭐 그렇게까지 두려울까 싶겠지만 겪어보지 않았으면 말을 말기를.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감정들이 제 멋대로 뭉쳐 우울증으로 번져 갔던게 아닌가 싶다. 그 적막함을 어쩔 도리없이 버티고 앉았다가 퍼뜩 책을 한 권 빼들었다. 임신을 확인한 후 가장 먼저 샀던 태교동화책이다. 당장 아이에게 읽어줄만한 책이 없었기에 그 책을 가져와 아이 옆에 누워 읽어주었다. 그것이 아이 책육아의 시작이었다.
아이와 단둘이 남은 공포와 불안을 타파하려 꺼내든 카드가 책이었다. 이후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책을 읽어주었다. 엄마 목소리를 많이 들려주라던 조리실장님의 말이 떠올랐다. 이거였어! 뭐가 커다란 힌트를 얻은 느낌이었다. 도톰한 책을 하루 한 두챕터씩, 나긋한 목소리로 읽어주며 하나의 시기를 건넜다. 그때만 해도 그것이 어떤 중요한 의미를 띠지 않았다. 그것으로 아이의 독서생활에 영향을 미친다거나 그것이 책육아라 일컫어지는 행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는 '책육아'라는 단어를 알지 못했다) 그저, 내 목소리를 들려주고픈 마음과 고적하고도 우울한 어떤 시기를 나의 목소리로 채워 잘 띄워보내고픈 마음이었다.
책육아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아이가 책을 가까이 하도록 책을 많이 읽어 주거나 읽히며 아이를 키우는 일’이라고 설명이 되어있다. 단서가 붙었다. ‘아이가 책을 가까이 하도록’이라고.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아이가 아닌 ‘내가 책을 가까이 하도록’에 더 가까웠다. 책을 가까이 해야 하는 건 아이가 아니라 양육자인 나였다.
책육아라는 용어를 이제는 다르게 이야기 해보려 한다. 아이를 키우기 위한 하나의 육아법처럼 소개되고, 양육자 또한 그런 의미로 쉽게 이해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방법은 다양하다. 100명의 아이가 있으면 100의 육아법이 있다. 누구집 아이는 책육아로 키우고, 누구집 아이는 밥육아로 키우나? 육아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정의내려 지는 것이 아니다. 책육아, 밥육아, 놀이육아, 여행육아 등 양육자가 더 의미 있게 이행하는 육아법이라 해서 하나의 단어로 쉽게 정의 내리지만 책은 좀 다르다. 책은 육아가 아니라 삶 그 자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