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의 전환

책생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by 책사이애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양육자는 아이들이 잠을 자려 누우면 책을 읽어준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도서관을 가고 유명한 전집 한 두 질은 중고든 새 상품이든 집에 들인다. 잠자리 독서나 도서관 방문, 중고 전집 한 두 질을 들였다 해서 ‘책육아’가 되는가?


책육아는 한 두 가지의 행위로 설명되기보다 아이와의 삶 전반에 일상처럼 내려앉는 양육방법이다. 가열차게 읽히고, 책과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수시로 제공하고, 도서관을 제집 드나들 듯한다고 해서 책육아가 아니다. 일상에서, 자연스러운 삶 안에서 독서를 특별한 행위로 인식하기보다 밥을 먹듯, 산책을 하듯 그렇게 당연하게 치러지는 행위로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를 키울 때만 책이 필요한 게 아니라 아이가 성인이 됐을 때도, 양육자의 나이가 더 들었을 때도, 나의 아이가 제 아이를 키울 때까지. 그렇게 육아할 때뿐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매 순간 모두 책은 필요하다.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보면 책을 가까이해야 하는 이유가 단순히 육아에만 머물지 않는다.


더 멀리, 더 높이, 더 깊이 있게 바라봐야 한다. 무릎독서라 해서 예닐곱 살 까지는 대부분 책을 읽어주고 책과 관련된 행사나 수업에 참여하기도 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면 한글을 뗐다는 이유만으로 아이가 혼자서도 척척 읽어내길 바라고, 3~4학년쯤이 되면 동화책보다는 지식책을 더 읽길 바라게 된다. 5~6학년이 되면 이제 중학교, 그러니까 평가제도 안에 들어가게 되니 책은 둘째치고 당장 성적과 관련된 독서로 관심이 변한다. 중학생이 된 아이들에게는 책을 더 이상 순수한 책으로 읽히지 않는다. 성적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전환된다.



초등 고학년만 돼도 사피엔스와 총균쇠를 들이밀고, 문학적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며 셰익스피어의 5대 비극을 내밀게 된다. 어른도 읽기 힘든 책들을 아이들에게 권하며 주제를 분석하고, 배경을 익히고 문법이나 문학적 장치들을 톺아내듯 읽으며 책을 ‘공부’한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책육아가 자연스럽게 책공부로 이어지는 수순이 안타까울 뿐이다. 학습에 필요한 책을 공부하듯 읽다 보면 어느새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며 봉긋하게 솟던 감동들이 엄마에게도 아이에게도 서서히 죽어간다.


언제까지나 동화책 읽듯 책을 읽어주라는 것이 아니다. 학습은 학습, 독서는 독서. 영리하게 잘 분리해서 어렸을 때 엄마가 읽어주던 감동과 뜨거움을 아이도 엄마도 마음속에 늘 간직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계속해서 읽을 수 있다. 책을 읽는다는 건 행복한 거구나! 엄마도 아이도 책육아를 말미암아 이후의 삶에서도 책으로 소통하고, 책과 함께 시간을 나누고 책 속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책육아가 책생활로 바뀌어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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