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너른 품

적극적으로 sos 요청하기

by 책사이애

“오빠, 오늘 좀 빨리 와 줄 수 있어?”

“왜, 무슨일이야?”

“무슨 일은 아니고… 너무 짜증이 나서 좀 힘들어. 자꾸 지아한테 짜증을 내게 되네. 점점 심해지고 있어. 오빠가 빨리 와줘야 할 것 같아.”

“그러지마. 지아한테 짜증 그만 내고, 오늘 일찍 들어갈게. 조금만 기다려.”

“응.”


짜증 조금 나기로서는 무슨 큰일일까. 아니다. 나에게는 제법 큰일이다. 평소 어떤 감정을 날것으로 표현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다. 아이를 대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스스로 날것의 감정을 드러낸 후에 밀려는 자괴감이 더 힘에 부쳐 언제부턴가 감정을 다스리는 일에 꽤 많은 에너지를 쓰고 또 자주 마음을 들여다본다.


어제도 한참 잘 조절했다 싶었는데 새로산 패드를 가져와 로그인을 해달라는 아이의 요청에 그만 깊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질병이다. 그냥, “지금은 좀 바쁜데 30분 후에 해주면 안될까?” 물으면 될 것을. 해줘야 한다는 마음과 할일이 밀려 있다는 마음이 붙어 결국 후자가 졌다. 그런데 승복은 하지 않은 경우다. 졌으면 깨끗이 밀려 나와야 하는데 질척대며 애꿎은 아이를 탓하다.


수순처럼 로그인이 되지 않았다. 아이디 비번을 죄다 바꿔 가며 겨우겨우 가입을 하면 무슨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화면 에러가 생겼고, 지금 이 시각에 그걸 왜 깔아 달라고 하는 건지 본질에서 벗어난 궁금증에 화가 더 치밀어 오른다. 사실 패드 설정을 잠궈 놓은 건 나였고, 필요한 앱이 있으면 의논해서 깔아준다고 한 것도 나였다. 아이가 깔아 달라고 했던 건 ‘연산 수학’이라는 학습 앱이었고, 회원가입에 미숙하다보니 실수가 잦아 혼자서는 어려워 내 방으로 들어온거였다. 정말이지 당연한 방문이었는데 나의 한숨이 아이를 주눅들게 만들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당장 보내야 할 피드백글이 4명이나 남아있었고, 35분 뒤면 줌모임에서 글 소감을 나눠야 한다. 촉박한 시간이지만 진정성 있는 소감을 남기고 파 온 정신을 집중해 열을 올리고 있는데 아이가 들어온 거였다. 두어번 로그인에 실패 하자 “이게 지금 꼭 필요해? 왜 이걸 지금 가지고 와서는. 지금 시간이 몇시야? 너 잘 준비 안해?” 말을 내 뱉는데도 스스로가 느껴진다. 정말 아무말이구나. 휴.


아이는 꼭 지금 해야 되는 건 아니라며, 엄마가 바쁜 줄 몰랐다고 사과하고는 방을 나간다. 아이가 나가고 나서 모니터 화면을 보는데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이 일었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고, 솔직한 상황을 이야기 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절반 이상 평정심을 찾을 수 있었다. 남편의 음성과 반응이 따뜻했고 또 진실되어 정말로 빨리 오지 않아도 이미 위로가 되었다.


잠시 뒤 거실로 나가 소파에 앉아 있는 아이를 안으며 진심어린 사과를 건넸다.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짜증을 냈노라고. 결코 네가 잘못한게 아니라 오늘 엄마의 감정이 못나서 그런거라고. 미안하다고 용서해 달라고. 아이는 다 이해한다는 듯이 오늘따라 엄마가 피곤해 보였다며, 자신이 잘못한것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고. 간식을 만들어 줄테니 먹고 쉬라며 더 세게 나를 안아주었다.


폭발할 것 같은 감정에서 남편과 짧은 통화를 끝내고, 아이에게 사과를 건네고 포옹하는 시간은 모두 합쳐야 10분이 넘지 않는다. 10분 만에 평정심을 되찾은 것이다. 아이가 만들어 준 콘치즈를 두 그릇이나 먹었고, 막상 솔직한 감정을 이야기 하고 또 이해 받고 나니 방금 전의 그 미칠것 같은 감정이 부질 없이 느껴졌다.


아이에게 양해를 구하고 하던 작업을 마저 끝냈다. 시간 안에 모든 일을 다 해낼 수 있었고, 또 해내지 못했다고 해도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는 일도 아니었다. 여전히 솔직하고 건조하게 이야기 하는 게 익숙치 않아 일이 커졌다. 그저 “지금은 안되니까 내일 해줄게” 정도였어도 충분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완전하게 마음이 편안해진 경험. 솔직하되 건조하게, 때론 민폐의 노파심을 벗어내고 진정어린 마음으로 부탁하기. 작은 아이여도 나보다 더 너른 마음을 가졌기에 언제든 나를 받아줄 수 있는 멋진 아이다. 한갓 짜증도 쉬이 넘기지 않고 진심으로 걱정해준 남편의 따뜻한 음성은 시공간을 넘어 거의 완벽하게 내 마음을 어루만졌다.


이 경험을 기회로 앞으로 나의 감정의 민낯에 조금 더 다가가볼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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