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는 희망, 무책임한 절망
까마귀와 몸집이 작은 참새가 신호등 위에 앉아 인사를 나눕니다. 오늘도 즐거웠어. 또 만나자. 돌아서 날아가던 참새가 건물 유리창에 부딪히지요. 쿵. 상처 입은 참새를 안고 까마귀는 달립니다. 치료를 하고, 이때까지 그 사고로 상처 입은 다른 새들의 깃털을 모아 놓고 함께 대책을 고민하기도 하지요. 유리창에 점 하나를 찍어요. 하나의 점이 여러 개의 점으로 바뀌는 동안 새들이 모여 함께 합니다. 온 건물의 유리창이 점으로 물들면 더 이상의 깃털은 모으지 않아도 될 것만 같아요. 색색의 점들을 바라보며 대책 없는 희망을 가져왔습니다. 다음 장을 넘긴 순간 숨이 턱, 막혔어요. 모든 건 까마귀의 상상이었던 거지요.
참새가 부딪혀 금이 간 유리창 앞에 선 까마귀의 뒷모습에서 무책임하게도 절망을 느낍니다. 십수 년 전의 제가 떠올라 마음이 오그라듭니다. 손끝이 베인 듯 아려와 자꾸만 문질러 댑니다. 눈물이 나오려는 걸 그러지 말자고, 비겁하고 같지 않게 어디서 눈물바람이냐고, 저를 꾸짖습니다. 십수 년이 지났어도 대책 없는 희망을 여전히 쉽게 꿈꾼다는 사실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무턱대고 눈물바람, 절망에 책임도 없이 안 보고 안 들으면 피해 갈 수 있을 줄 알고 숨기만 했던 못난 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저는 아이들이 그렇게도 무력하게 시커먼 바다 아래로 가라앉은 줄 몰랐으니까요. 정말이지 몰랐으니까요. 그 영상을 보며 분식집에서 시뻘건 떡볶이를 먹고 있었으니까요. ‘전원 구조’라는 단어를 분명히, 분명히 보았으니까요. 그렇게 된통 당해놓고도 바보 같이 또 대책 없이 희망을 가져왔어요. 까마귀 같은 친구가 있어 다행이라고, 작은 참새는 ‘당연히’ 살아났다고, 그림책이니까. 이건, 그림책이니까.
모든 새들이 축제를 벌이듯 색색의 점을 찍어 대는 동안 잠시 그 축제에 저 또한 들어가 있었어요. 그렇게 온갖 변명을 가져와도 쉬이 아물지 않는 또 한 번의 절망을 그림책 <점과 선과 새>를 보며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세상이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이 결국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들었어요. (정혜윤작가님 북토크 중에서) 그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같은 마음이라 반가웠어요. 절망이 그득한 세상이지만 아름다운 사람과 삶이 있는 한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동화 같은 믿음이 있었지요. 문득 다시 한번 되묻게 됩니다. 그 믿음이라는 것이 결국 절망과 비극에 몸서리치던 누군가의 희망이지 않느냐고. 그 희망을, 뜨거운 희망을 네가 그렇게 함부로 이야기해도 되는 거냐고. 너의 그 믿음은 어디에서 온 것이냐고. 질문을 내뱉고는 두 손바닥에 얼굴을 묻습니다. 앞으로 저는 희망도, 절망도, 믿음도. 그 어떤 말도 쉽게 내뱉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그림책이라 너그러웠던 말랑거리던 마음이 그림책이기에 그러면 안 된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려 봅니다.
'글로채움' 주제글쓰기 중에서
질문 - 깊게 남아있는 그림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