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돌아보며

실패의 한가운데에서

by 책사이애

매년 연말이면 연초의 키워드를 떠올린다. 언제부턴가 나만의 슬로건을 만들어 한 해 동안의 기운을 그것에 집중하고 있다. 23년은 ‘다정함’, 24년은 ‘집밥’. 올해는 ‘도전’이었다. 그 맘 때 막 러닝에 재미가 들려있었고, 강의로 마주하는 참가자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관련 저서를 출간해야겠다는 포부도 있었다. 그렇게 호기롭게(라고 쓰고 대책 없이라고 읽는다) 책을 출간할 것이다! 선포하게 되었다. 또 언젠가의 꿈으로 뉴욕 마라톤 풀코스 완주라는 버킷 리스트 같은 도전도 함께 언급했다. 당장 이뤄 낼 현실적인 도전에서부터 언젠가의 미옥(미래의 현옥)이가 해내야 할 숙제 같은 도전이었다. 그래서 당장 이뤘어야 할 도전에 성공하였느냐? 아쉽게도 성공하지 못했다.



책을 출간하기 위해 끊임없이 꿈틀거렸다. 출간이라는 산을 오르면서 수시로 뒤를 돌아봤다. 얼마나 올라왔을까? 얼마나 더 가야 정상일까? 와 같은 궁금증이 아니었다. 이제라도 내려가면 안전하게 하산할 수 있을까? 보이지도 않는 정상보다 지나왔던 길은 잘 알고 있으니 그냥 내려가 버리자!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이 흔들렸다.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시간은 무심히 지나갔다. 그렇다고 그 시간 동안의 내 노력이 무용했다는 말은 아니다.



3월, 생애 첫 수필강좌를 신청해 부지런히 청강했다. 동서 문학상 대상 수상 작가가 우리 지역 도서관에서 ‘수필공방’이라는 수업을 진행한다는 소식에 거두절미 수강 신청을 했다. 같은 요일 ‘나만의 그림책 만들기’ 수업과 (실제 그림책을 제작해 주는 프로그램) 2년째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던 학부모 독서모임 (김성환 작가님이 진행하시는)이 겹쳤다. 세 수업 모두 중요하고 또 필요한 수업이었지만 ‘도전’이라는 올해 슬로건을 십분 활용하기로 하고는 선생님의 ‘수필공방’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선택은 지금 나에게 많은 걸 던져주었다.



책출간이라느니, 습작이라느니, 글 좀 썼다느니 하는 어쭙잖은 객기를 한 번의 빗질로 말끔히 쓸어냈다. 글이라는 건 써야 한다는 당위만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는 걸 배우게 되었다.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써지는 것. 나에게서 써질 이야기들과 동거하기 위해 또 글과 내 삶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많은 부분을 조정해야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첫 만남에서 선생님을 나의 글스승으로 삼자 속으로 다짐했고, 그 후로도 선생님의 수업을 열심히 쫓아다녔다. 6~70대 수필가(참여자들 대부분 기성 작가선생님들)들의 글을 격주로 만나며 작품이 되는 글을 읽고 들었다. 선생님의 책이 올해 양산(내가 사는 지역) 시 책으로 선정되어 크고 작은 행사가 많았다. 운 좋게 내가 진행하는 독서회에 선생님을 모셔와 북토크도 진행하고, 선생님의 여러 북토크에 참석하면서 더욱이 가까워질 수 있었다.


어느 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내년 여러 군데의 도서관에서 수필 수업을 열 계획인데 내가 함께 해주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단순히 글을 써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 아닌 조금 더 큰 그림의 제안이었다. 선생님의 그림 속에 나라는 점 하나를 찍고 싶다는 말씀이셨다. 5년 전 도서관 팀장님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주무관님의 전화가 떠올랐다. 그때도 이런 느낌이었다. 팀장님의 제안(당시 육아서 대출 순위가 가장 높았다는 이유)으로 육아 독서회를 시작하며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고, 여기까지 기꺼운 마음으로 달려왔다. 다시 또 선생님의 제안에 마음이 찰박 인다.



고로, 올해 나는 책을 출간하지 못했다. 하지만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을 출간하겠다는 다짐 아래 숨은 나의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들려 드릴지에 대한 고민에 답을 얻었다. 책을 출간하기 위한 글이 아닌 나를 이야기하는 글로 책을 만들기로 한다. 이 커다란 다짐이 올해를 내 인생에서의 가장 큰 변곡점으로 기억되게 할 것이다. 반 구십 살, 생의 절반이라 한다면 나는 아직 많고 많은 글과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올해의 도전에 실패함이 전연 아쉽지 않은 이유는 내가 찍은 점의 무게와 앞으로 만나게 될 또 다른 세상이 분명하고도 명징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글로채움' 주제글쓰기 중에서

질문 - 한해를 돌아보며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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