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없는 시간 속에서도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습니다. 해가 뜨면 지기 마련이고, 한 해가 끝나면 다시 새해가 열립니다. 비가 오면 그치는 날도 있고, 낙엽이 떨어지고 나면 분명하게 새순이 돋아나기도 합니다. 순리이지요. 거스를 수 없는 순리임에도 순간에 천착한 우리는 그 미묘하고도 영화로운 변화를 쉬이 보지 못합니다.
만남 속에서의 기쁨과 설렘이 계속되길 바라고, 검은 밤의 미학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이가 잘 보이는 환한 햇살 아래에서 작은 비명을 질러댑니다. 새해가 시작된다는 불변의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마지막 날의 여운을 그 밤의 끝에 연처럼 매달아 창공으로 날리우고, 낙엽이 아름답다 감격하면서도 앙상한 나뭇가지의 끝에는 더 이상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기어이 날 좀 보라는 뽀얀 새순이 자태를 움트고 나서야 뒤늦게 봄의 안부를 묻게 됩니다.
오늘 저는 우리의 만남에 끝이 왔음을 직감하며 그간 그대에게 받은 달큼한 마음에 감사 인사를 전하려 합니다. 이 만남의 끝이 끝이 아니라는 말 따위는 하지 않으려 합니다. 끝이 있어야 다시 또 만남이 시작되기에 우리의 끝을 완벽한 끝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끝을 그대와 잘 나눠 갖는 것으로 지난 시간들 속에서의 우리를 완벽하게 그곳에 남겨두기로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우리가 함께한 모든 낮들이 검은 하늘로 뒤덮여 적막해졌습니다. 새해가 곧 밝아 오겠지만 그 해가 어제의 해,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해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바라본 낙엽은 이제 어디에도 없습니다. 차가운 바람에 날려갔고, 눅눅한 땅 밑에, 이름 모를 누군가의 발자국에 모두 다 짓이겨졌습니다. 우리가 함께 한 많은 순간은 그렇게 자연스럽고도 당연하게 모두 다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우리 만남의 끝이 다른 만남으로 이어지리라는 기대 또한 갖지 않기로 합니다. 언제고 그대를 다시 만난다면 그때의 저는 어제까지의 저와는 다른 사람일 것입니다. 그때, 다른 저라도 그대의 마음에 들어앉을 수 있다면 다시 한번 저를 그 눈 속에, 마음속에 찰박 이게 담아 주세요.
저는 어제까지의 그대를 그리워하지 않기로 합니다. 오늘부터 나에게서 바뀌어버린 그대를 조금 더 추억하고, 기억하며 시간을 흘려보내겠습니다. 그러는 동안 다시 또 어떤 만남이 시작되고, 해가 뜨고, 새순이 돋고, 한 해가 시작되겠지요. 그 모든 시간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 들기로 합니다. 그대가 없는 시간 속에서도 저는 당연스럽게 모든 시작과 존재를 있는 힘껏 사랑하기로 합니다.
잇글 2기 13번째 에세이
주제 : 인사 또는 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