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글쓰기

맥주와 식혜

by 책사이애

“지아야, 엄마, 꿈이 있어.”

“뭔데?”

“책을 내고 싶어.”

“내!”

“...”

“책 내면 되지! 뭐가 문제야?”

“문제랄건 없지만, 말처럼 쉽지 않네,”

“별 걸 다 걱정하네? 글을 써. 그리고 책을 만들어!”

“그렇지? 별 걸 다 고민하지? 근데 왜 용기가 안 날까?”

“용기? 내가 도와줄게. 엄마 글 쓰게 내가 도와줄게.”

아이와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 앉아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저녁을 때우고 있었다. 얼음컵에 맥주를 따라 두어 모금 마셨을 거다. 의식의 흐름대로 머릿속을 지나는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책을 내고 싶어. 흐르는 말이었는데 아이가 대뜸 낚아챈다. 반대로, 아이가 똑같은 말을 했어도 내 대답은 다르지 않았을 거다. 내! 뭐가 문제야? 글 써!


나의 맥주잔과 아이가 마시는 비락식혜 캔이 맞부딪힌다. “엄마, 같이 쓰자! 내가 도와줄게.” 남은 맥주를 모두 들이켜고 테이블 위에 놓고는 아이와 하이파이브를 한다. “맥주와 식혜 프로젝트!” 지금의 상황, 그러니까 늦은 오후 편의점 야외테이블에 앉아 나눈 우리의 이야기, 감정, 상황을 각자의 글로 써보자는 데에 의견이 모였다. 같은 주제를 각자의 입장과 감각으로 써보기로 한다. 매주 그렇게 주제를 정해 서로의 이야기를 들여주는 형식으로 원고를 모아 책을 내기로 한다. 늘 그렇듯 말은 쉽고, 마음은 쓸데없이 부풀어 오른다.

그날의 일을 쓰기 시작해 아이와 몇 편의 글을 주고받았다. 몇 번 열심히 쓰는가 싶더니 아이는 금세 마음이 식어버린다. 늘 그렇듯. 몇 번 나 혼자서 쓰다가 이내 힘이 빠진다. 잠정 중단을 선언하고 기존에 하던 필사를 조금 더 정성 들여 쓰라 이른다. 마음 한편은 못내 아쉽다. 아이와 함께 글을 쓰는 나, 속으로 좀 멋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아이와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많아졌다. 취향이나 성향은 차치하고 옷이나 양말을 공유하는 일, 맵거나 소화시키기 어려워 피하기만 했던 음식을 아이의 입맛을 고려하지 않고 함께 먹는 일등. 그중에 내가 좋아하는 영화나 음악을 함께 나눈다거나 책과 작가의 정보를 공유하는 일 또한 벅차게 근사한 일이다.


근사한 무엇을 다른 사람도 아닌 나의 아이와 나누는 건 경이로운 일 아닐까? 글이라니. 글쓰기를 나눈다니. 어쩌면 글쓰기로 지나온 나의 삶 전체를 아이에게 내보일 수 있다 생각하면 절로 가슴이 뻐근해졌다. 기대가 컸던지 아쉬움도 컸다. 어떻게 하면 아이와 글을 나눌 수 있을까.

이런저런 시도 끝에 초등 온라인 글쓰기 수업을 만들었다. 기존 주제를 제시해 어떻게든 쓰기만 하면 됐던 글쓰기에서 업그레이드된 글쓰기 모임이다. 한 편의 원고가 완성되기까지 여러 차례 수정을 거친다. 더 이상 손글씨가 아닌 자판을 두드려 빠르게 효율적으로 글을 쓴다. 또 온라인에서 함께 쓰는 친구들과 서로의 글을 공유하고, 눈높이에서 공감대가 높은 소감과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성취감과 읽히는 재미를 느낀다. 지난주 두 편의 글로 워밍업을 했고, 오늘 본격적으로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온라인으로 제시된 주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다.


아이는 진즉 원고를 완성했고 나 또한 1차 피드백을 끝냈다. 고쳐야 할 문장을 이야기하고 한 번에 고치는 것에 의의를 두기보다 고쳐야 할 것들을 배우는 시간으로 첨삭을 활용했다. 지금 아이는 나의 옆에서 1차 수정을 하고 있다. 한 번에 매끈하게 글을 수정할 리 만무하다. 매끈하게 고치라고 일러준 피드백도 아니다. 자신의 문장을 한번 더 진하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만들어 줌으로 문장이 가진 여러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알아차릴 수 있길 바란다.


사실 아이는 제 나이에 맞춤 맞게 잘 쓰고 있다. 수정하거나 고쳐야 할 글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집중해 자신을 표현한 귀한 글이다. 그것을 아는 나는 원본이 가진 힘을 계속해서 칭찬한다. 충분히 좋은 글이지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읽히는 글로 바꾸는 것이 독자를 배려하는 작가의 기본적인 태도라 조언한다. 아이는 제 글에서 ‘틀린’ 부분이나 ‘고쳐야’할 부분을 찾는 게 아니라 독자에게 더 ‘편안하게’ 읽히고, 그 속에서 ‘감동’을 일으키기 위한 선물 같은 글을 쓰는 연습을 하고 있다.


첫 번째 독자인 나에게 그것 자체로 감동인 아이의 글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 아이가 맥주잔을 기울이며 나에게 푸념하는 날을 상상해 본다.

“엄마, 나 꿈이 있어.”

“뭔데?”

“책을 내고 싶어.”

“내!”

“...”

“책 내면 되지! 엄마가 출판사를 하나 차려??”

“출판사가 문제가 아냐, 글을 못 쓰겠어서 그래”

“글을 왜 못 써? 네가 글을 얼마나 잘 쓰는데!”

“아이고, 엄마한테나 그렇지. 책을 낼 정도는 아니지 솔직히.”

“무슨 소리! 엄마가 도와줄게. 넌 딱 글만 써, 네가 쓰고 싶은 글 마음껏 써!!!”

아이가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쓸 수 있는 날을 상상하며 오늘도 아이의 글을 온 마음 다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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