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쓰는 아이는 어떤 아이일까요?
10명의 아이들과 글을 쓰고 있습니다. 화, 수, 목요일 각 요일별로 정원 4명이 넘지 않습니다. 각자 글을 쓰는 데도 한 공간에 둘러앉아 있다 보니 가만히 글만 쓰는 것도 사실 말이 안 되긴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은 문장 한 줄, 단어 하나에도 구구절절 말이 많습니다.
"선생님, 막 이렇게 써도 돼요? 꿈꾼 것처럼, 그러니까 실제로 꾼 건 아닌데 제가 꾼 것처럼 그렇게 써도 돼요?", "근데 선생님, 글을 쓰려고 하니까 아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 자꾸만 생각나요." 글에 대한 이야기도 많지만 대부분 오늘 본인이 겪은 일을 이야기하고 싶어하고 선생님인 저에게 이야기하는 척 주변 아이들의 반응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사실 그런 이야기들은 오늘 쓸 글이나 지금 이 시간에 나눌 법한 이야기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모여서 글을 쓴다는 건, 오늘의 자신을 이야기하고 들려주고 보여주는 것도 포함이 되는 것이지요. 그것들이 모두 모였을 때 아이는 일주일에 한번, 오늘 이 시간을 기꺼이 기다리고 또 치러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각자 한두 마디씩 꺼내다 보면 어느새 분위기가 어수선해집니다. 귀중한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면 늦지 않게 중재를 합니다. "자자, 이제 입은 쉬고 손이 바빠지자!" 머릿속에 아무리 많은 생각이 그득 차 있어도 손으로 옮겨 적지 않으면 소용이 없으니까요. 결국 아이들의 글쓰기는, 잘 쓰는 글의 비결은 바로 ‘손힘’입니다. 이건 정말 진리! 손의 힘이 강한 친구들이 바로 글을 쉽게 잘 쓰는 아이입니다.
‘글자’를 잘 쓴다는 건 ‘글’을 잘 쓰는 것(표현력) 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맞춤법을 몰라도(저학년 친구들은 대부분 맞춤법을 어려워합니다) 거리낌 없이 써 내려가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또 한글을 읽고 쓰는 것에 불편함이 있어도 쓰는 것 자체를 편하게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고요. 저는 ‘글자 쓰기’를 얼마나 재미있어하는지, 또 공들여 쓰는지에 따라 글쓰기에서의 능력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걸 크게 느낍니다. 모르겠는데, 틀린 것 같은데 그런데도 자신이 할 말을 기어이 종이에 쏟아내야 하는 아이들, 오히려 무슨 글자가 틀렸는지조차도 모르고 무작정 써 내려가는 친구들은 종내에는 정말로 글자가 아닌 ‘글’을 잘 쓰게 되더라고요. 그런 친구들의 가장 큰 특징은, 팔이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글쓰기 시간, 아이들이 가장 많이 내뱉는 말은 “아이고 팔 아파!”인데요. 이 말의 의미는 두 가지로 나뉩니다. 정말로 쓰기 싫을 때와 자신의 글이 꽤 잘 쓴 글처럼 느껴질 때 그것을 어필하기 위해 이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전자인 경우는 오늘 무슨 말을 해줘도 글을 안 쓰고 갈 가능성이 많고, 후자인 경우는 슬쩍 읽는 척하며 엄지를 세우고 눈을 찡긋해주면 멋쩍게 웃으며 다음 문장을 끄적여 나갑니다. 그런 친구들 속에서도 단연 에이스들은 다른 면모를 보이는데요. 바로 아무리 많은 활자를 써도 팔이 아프다는 말 따위는 하지 않는 아이들이지요.
글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팔이 아픈 것쯤은 상관이 없는 아이들인 거지요. 지면을 채워야 한다는 목적의식도 한몫합니다. 일례로 제가 300자 미션을 넌지시 던진 적이 있습니다. 이미 오늘 분량의 글을 다 쓴 친구들이었지요. 시간이 20여 분 남아 돌발로 미션을 던졌고, 수행하면 자그마한 고리 인형을 사준다고 했지요. 세 명의 아이들은 1초의 망설임 없이 도전한다는 의사를 밝혔고, 20분 안에 300자를 써 내려가기 위해 0.1초도 쉬지 않고 글을 썼습니다. 놀라운 건 즉석 주제에 촉박한 시간, 300자를 채우기 위해서는 준비된 지면을 빼곡히 채워야지만 가능한 미션이었는데 3명의 아이 모두 400자 가까운 글을 썼고, 글의 퀄리티도 아주 좋았습니다. 이 친구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손힘을 크게 깨달을 날이기도 하지요.
글쓰기는 힘의 밸런스이기도 합니다. 앉아 있는 힘, 써 내려가는 힘, 그리고 자신이 쓰려는 말의 힘입니다. 3박자가 고루 맞춰지면 아무리 어려운 주제나 형식을 들이밀어도 아이들은 자신의 글을 씁니다. 글에서 표현하는 문장의 힘도 중요하고, 집중하고 앉아 방해받지 않고 쓰는 태도도 중요하지만 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힘은 바로 써 내려가는 힘입니다.
단순히 손가락 힘으로만 이해하시면 안 되고요. 자신의 생각을 옮겨 적는 과정에서의 몰입과, 지면을 채우겠다는 일말의 책임감, 시시하지 않은 글을 쓰기 위한 보이지 않는 본인만의 노력들, 그 모든 것들이 모여 아이의 손에서 시작되는 것이라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나의 아이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시나요? 반대로 못쓴다고 생각하시나요? 초등 저학년 친구들은 이것만 봐주셔도 됩니다. 자신의 손끝에서 뿌려지는 글자들이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힘들어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볼 수 있는 아이, 자신의 글에 애정을 가지고 끝까지 마무리하는 것에 다른 핑계나 변명을 늘어놓지 않는 아이. 그런 아이라면 저는 무조건 ‘잘 쓰는’ 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미지 <도서관 - 데이비드 스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