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에게 가장 오래된 물건

우리 역사의 매듭

by 책사이애

그간 교제하는 연인에게서 반지를 여럿 받았다. 커플링이라는 미명하에 같은 디자인의 반지를 굵기만 다르게 해 나눠꼈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상대와는 문구점에서 몇 백 원이면 살 수 있었던 조잡한 반지를 재미 삼아 나누기도 했고, 벌이가 적지 않던 상대에게서는 알이 제법 큰 화려한 18k 반지를 받기도 했다. 직장 생활을 하며 벌이가 안정되었을 때도 꼬박꼬박 데이트 비용을 더치페이 하던 상대와는 14K 실반지를, 나는 피부가 짙은 갈색인 편이라 금보다는 은이 어울리는 것 같다며 비용을 부담스러워하던 상대에게는 친절한 교태를 부리며 은반지를 나누기도 했다. 이마저도 그나마 기억에 남아 있는 경우고, 실상 기억에서도 사라진 반지들은 개수를 헤아릴 수 없다.


지금 나의 남편인 한목사(한때 내가 목숨 바쳐 사랑했던 의 줄임말, 애칭이다)에게서 오래전에 받은 목걸이가 있다. 특이하게 그는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첫 선물로 금목걸이를 전했다. 내 나이 열다섯 살 때다. 흔해빠진 커플링도 아니고, 이렇다 할 기념일도 아니었는데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금목걸이는 케이스도 없이 내 손바닥 위에 덩그러니 올려졌다. 티브이에서나 듣던 ‘오다 주웠다’를 눈앞에서 시전 한 한목사는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을 것이다. 30년이 지난 지금, 나의 발목에서 피부처럼 둘러져 있는 이 목걸이의 생명력을.


한목사에게서 받은 금목걸이를 포함해 내 몸을 머물다 간 귀금속들을 떠올려본다. 반지나 목걸이뿐이랴. 귀걸이에서부터 팔찌까지. 결혼도 안한 사이에 무얼 그리 기념하고 싶었던 걸까, 재산 증식을 이유로도, 알량한 있어 보임을 이유로도 하찮았던 금붙이들을 바득 바득 손가락에 끼우고, 목과 귀에 걸었던 이유는 아마도, 가졌다 한들 결코 가질 수 없었던 누군가의 진실한 마음을 여기저기 표나게 내 걸고 싶었던 마음은 아니었을까? 이제 와 그것들의 행방이 묘연함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내 발목에 안착한 한목사의 목걸이가 마법을 부린 듯 여전히 내 곁에서 뜨겁고 진한 마음을 계속해서 전하고 있는 그의 애정이 사라져 버린 그것들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질기다. 이제는 이 목걸이를 다르게 정의 내려본다. 한목사와 나의 인연을 도탑게 이어주는 매듭으로. 그리고 문신처럼 피부처럼 딱 붙어버린 우리 역사의 증표로.


글로채움 '지금 나에게 가장 오래된 물건'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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