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또는 해이

이유있는 꾸밈

by 책사이애


콜라겐 마스크 팩을 덜렁덜렁 들고 와서는 나에게 내민다. 저녁 식사 전 잠시라도 쉬고 싶어 침대에 누웠는데 순간 성가신 마음이 인다. “요즘 피부가 너무 엉망이야.” 마지못해 몸을 일으켜 자리를 내어주니 안경을 벗으며 그 자리에 눕는 남편, 아닌 게 아니라 최근 잦은 출장으로 피부 트러블이 눈에 띄게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반백살이 가까워 오는 남편은 전에 없이 외모를 가꾼다. 20대부터 급격한 탈모로 정수리께 머리숱이 많이 비었다. 정면으로 거울을 보면 잘 보이지 않아 당사자인 남편은 심각성을 몰랐을 것이다. 나와 결혼을 할 무렵이던 30대 초반임에도 저 멀리서 보면 정수리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대머리 하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반짝반짝’. 그렇게 20년 가까이 무심히 지내오던 남편이 작년 모발이식수술을 받았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풍성하게 자라 스타일링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숱은 아니지만 정수리가 보송보송한 털로 맞춤 맞게 덮였다. 더 이상 ‘반짝’이지 않는 머리에 수시로 약을 보조해 먹으니 제법 보기 좋게 자릴 잡았다. 얼마 안 가 치과를 다녀온다더니 수백만 원을 내고 교정치료를 시작했다고 한다. 중학교 때도 교정기를 했었다. 시모의 원가족들을 만나고 알게 된 건 남편의 뻐드렁니는 모계 쪽 유전이었고 유난히 위로 솟은 앞니는 오래전 교정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아 별 수 없이 웃자란 불가피한 모양새였다. 가지런한 이가 아니어도 상관은 없다지만 남편은 그것이 나름의 콤플렉스였던가 보다.


진작에 할 걸 그랬다며 교정치료를 시작하고는 얼마간은 무척 힘들어했다. 잇몸이 약해져 영양제를 구입해 열심히 먹기도 했고,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지만) 되도록 피했다. 음식을 먹은 직후 양치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좋아하던 군것질을 대폭 줄였고 무엇보다 바쁜 일상에서 시간을 내 병원을 찾아야 하는 성가심에도 남편은 온순한 강아지 마냥 모든 일에 잘 따라갔다.

자외선 차단 마스크를 신경 써 챙기고 선블록을 얼굴이 문지른다. 이너셔츠 색깔도 세심히 신경 쓰고 양말 하나도 아무 거나 신지 않는다. 100ml 향수를 아낌없이 온몸에 뿌리고 얄따란 팔찌도 끼고 톤업 크림으로 피부톤도 정리한다. 누군가에겐 유난스러워 보이는 일련의 이 일들은 사실 내가 종용하고 신경 써준다. 선블록과 톤업 크림을 잘 펴서 발라야 한다며 나가기 전 얼굴을 체크해 주고, 전체적인 색감에 어울리지 않는 이너셔츠를 갈아입으라 조언해 준다. 니트를 보관하는 옷장에 남편이 좋아하는 향수를 뿌려 두고 바디 로션과 폼클렌징도 세심히 관찰해 구비해 준다.(욕실을 따로 쓰고 있다)


갓 마흔이 넘었을 무렵 우연찮게 시작한 남편의 사업은 화려한 겉보기와는 다르게 거칠고 또 무거웠다. 일에 치여 사람에 치여 그렇게 조금씩 심신이 멍들어가던 남편은 한동안 말과 표정을 잃었다. 무거운 침묵과 구겨진 인상으로 자신이 지금 얼마나 가혹한 고통을 겪고 있는지 표현하던 남편이 최근 눈에 띄게 가벼워졌다. 일의 양과 돌아가는 회사의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지만 그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 이후로 남편은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간다.


에센스를 그득 머금은 팩을 조심스레 펼쳐 남편의 얼굴에 덮어준다. 끈적하지만 피부에 좋은 성분이라고 생각하니 아까운 마음이 들어 손에 남은 액체를 남편의 손등에 옮겨 펴 발라준다. 두툼한 손을 끈적하지만 촉촉한 에센스와 함께 연신 만지작 거린다. “내가 그래 좋나?” 남편의 입버릇이다. “좋아서 하나? 아이고, 내 없으면 이런 거 해주는 사람도 없다.” 남편은 해이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팩을 얹은 남편의 옆에 누워 출장 간 사이 딸아이와 있었던 일들을 종알종알 쉬지 않고 이야기한다. 왜 쇼츠를 안보냐 물으니 너랑 나란히 누운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며 나와 이야기하는 게 더 좋다 말해주는 남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스크 팩이 다 마를 때까지만 조금 더 누워 있기로 한다.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던 아이가 대뜸 방으로 들어선다. “엄마, 밥 언제 먹을 거야!”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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