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착

잇글 '다시 / 시다'

by 책사이애


새벽 5시 눈을 떴다. “비행기가 연착이래.” 공항으로 마중 가기로 한 남편에게서 메시지가 와있다.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1시다. 정확하게 40분 후, ‘비행기 탐’이라는 메시지가 이어 찍힌걸 확인하며 몸을 일으켰다. 오늘 6일 만에 남편을 만난다. 출장이야 흔한 일이지만 이번처럼 길게, 또 멀리 떨어진 적은 없었다.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새벽 공기가 이전만큼 서늘하지 않다. 배를 내놓고 잠든 아이의 내복을 조심스레 내리고 이불을 덮어준다. 지난밤, 이른 새벽 집을 나설 테니 알람 소리를 잘 듣고 일어나 등교 준비를 단단히 하라 일렀다. 혼자서도 잘 있는 아이지만 이른 아침, 그것도 학교를 가야 하는데 혼자 두는 건 처음이라 마음이 쓰였다. 아이가 먹을 아침을 간단히 준비하고 집을 나섰다.


아침이라고는 하지만 하늘이 컴컴하다. 시동을 걸고는 잠시 숨을 고른다. 내비게이션을 조정하고 도착 시간을 확인한다. 연착이라고 했으니 그전에 주차까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긴 시간 헤어져 그리운 마음을 표현할 요량으로 도착장 앞에서 손을 흔들어 주리라 마음먹는다. 얼마간 엔진이 데워지고 액셀을 밟으며 새벽 공기를 밀고 나선다.


공항에 도착하니 어느새 사위가 환해졌고 아이가 일어날 시각이다. 주차를 끝내고 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가 얼마 가지 않아 아이는 전화를 받았고, 막 잠에서 깬 듯 옹알이 같은 대답만 웅웅거린다. 일어나 아침을 먹고 준비하라는 말을 한번 더 건네고 전화를 끊었다. 주차장에서 국제선 도착장까지는 거리가 멀었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도착장에 들어서니 이른 아침이라는 시각이 무색하게 인파가 넘쳐난다. 커피를 한잔 사서는 자리를 잡았고, 언제 나올지 모를 남편을 기다리며 출구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뜨거운 커피를 불어 마시다 말고 아이에게 한번 더 전화를 한다. “준비는 다했어?” “응, 하고 있어!” “그래, 잘했어, 7시 50분에 늦지 않게 나서야 돼.” “알았어, 걱정하지 마!” 간단한 말을 주고받고는 전화를 끊었다. 등교 때는 핸드폰 전원을 끄고 가방에 넣어가기 때문에 이후로는 통화를 하지 못한다. 혹시 몰라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에게 버스 타는 것만 확인해 달라 부탁해 놓았다.


얼마 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아가 안 오는데?” 시간을 보니 7시 58분이다. 셔틀버스 도착시간은 8시. 예정대로 7시 50분에 나섰다면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랑 50분에 통화했어. 전화는 꺼져 있을 거라 지금은 통화가 안될 거야.” “그럼 내가 집으로 한번 올라가 볼게.” “아직 버스는 안 왔지? 조금만 더 기다려봐. 가고 있는 중일 거야.” 전화를 끊고는 혹시 몰라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꺼져있다. 잠시 후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저기서 걸어오는 거 보여.”


연착이라던 남편은 생각보다 일찍 나왔다. 오랜만에 보는 모습은 피로해 보였지만 반갑고 또 기뻤다. 짐을 나눠 들고 남은 빈 손을 맞잡았다. 멀리 떨어진 주차장으로 함께 걸어간다. “지아는 학교 잘 갔대?” 남편의 단순한 물음에 오래전 기억이 떠오른다.


잠이 없는 아이, 울음이 많은 아이, 불안도가 높은 엄마, 도와주는 이 없는 독박육아. 여러 난제가 뭉쳐 초보 엄마의 하루하루는 전쟁이었다. 지난한 하루를 버텨내기 위해 속으로 다짐한 말이 있다. ‘내가 없어도 살 수 있을 만큼만 키워 놓자.’ 그 말의 적확한 의미나 의도는 모르겠다. 그저 내가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연약한 존재가 무거웠다. 어떻게든 자력으로 살 수 있을 만큼만 버텨내 보자는 다짐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던 때다. 그런 연약한 존재였던 아이가 오늘, 내가 없이도 자신의 삶을 보란 듯이 잘 치러냈다.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 무리 없이 할 일을 다 치러내고 늦었지만 당연하게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의 흔적을 둘러본다. 한입 베어문 마른 빵과, 소파에 어질러진 책들. 벗은 잠옷은 침대 맡에 걸어두었고, 거실 불은 켜져 있다. 평소 시간보다는 조금 늦게 도착했지만 아이는 수순처럼 버스를 탔다.

금요일 연재
이전 14화연결 / 결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