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 / 결연

속병

by 책사이애


주말 저녁 소파에 누운 아이가 한참을 늘어져있다. 잘 시간이 가까워 오는데도 티브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미동이 없다. “지아야, 잘 준비해야지.” 어기적거리며 일어나 몸통을 세워 앉는 아이의 얼굴이 창백했다. “몸이 안 좋아? 머리 아파?” 아이는 별다른 말이 없다. 옆에 앉아 머리를 쓰다듬었다. 열이 나진 않았다. 이따금 컨디션이 저조할 때가 있다. 두통이 잦기도 하고 또 감정의 기복도 있는 편이다. 병원을 찾을 정도가 아니라면 부러 소란을 피우지 않는다. 미지근한 쑥차를 연하게 우린 머그컵을 아이의 입술 가까이 대어준다. 이파리 같은 입술이 빼꼼 열리고 차 한 모금을 꿀떡 삼킨 후 아이가 말한다. “속이 안 좋아.”


아이는 속병을 자주 앓았다. 서너 살 때부터 구토를 자주 했다. 한참 잘 자고 있다가도 새벽 무렵 울컥 울컥 소리가 들려 눈을 떠보면 아이는 누운 자세로 눈을 감고 구토를 하고 있다. 저러다 숨구멍이 막힐까 싶어 놀란 마음에 아이를 발딱 들어 안았다. 속에 있는 음식물을 여러 차례 게워내면 아이는 금세 편안해했다. 아이가 자라며 횟수가 줄긴 했지만 속병은 곧잘 우리의 밤잠을 방해했다.


방으로 들어와 매트 온도를 살짝 올리고 아이를 눕혔다. 찜질팩을 데워 수건에 감싸 아이의 배 위에 올렸다. 뜨거운 걸 싫어하는 아이다. 그래도 이 순간은 마다하지 않는다. “너무 뜨거우면 이야기해.” 수순처럼 이어지는 나의 레퍼토리. 엄마도 어렸을 때 많이 토한 거 알지? 한밤중에 부산 할머니를 깨울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엄마는 이불을 걷어내고 방바닥의 가장 따뜻한 자리를 찾아 배를 깔고 누워 있었어. 그러면 어느 순간 잠이 들었어. 자고 일어나면 끝! 언제 그랬냐는 듯 배가 깨끗이 나아 있었지. 그러니 너도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 질거라는 위로를 애둘러 표현한다.


이내 아이의 입에 침이 고인다. 흥건한 침을 삼키는 것으로 구토의 신호를 알려온다. 미리 준비한 대야를 아이의 턱 앞에 대어주고는 등을 두드린다. 꾸덕꾸덕한 토사물이 올라올 때마다 아이의 어깨가 한껏 움츠러든다. 작은 몸으로 섭생을 거스르려 하니 그 몸이 악을 쓰지 않을 도리가 있나. 온몸에 힘을 줘 한 움큼 토해내고 나면 목구멍이 따가운지 연신 목을 문지른다. “엄마, 목 아파.” 물 잔을 건네 한 모금 마시게 한다. 위산이 지나온 목이며 입, 콧구멍까지, 모든 구멍 길이 쓴맛으로 물들면 아이의 고개가 절로 내저어진다.


“엄마 미안해.” 아이는 기어이 내뱉고 만다. 아이의 레퍼토리. 밤마다 자꾸 미안해. 엄마도 이제 쉬어야 하는데 괜히 나 때문에. 나는 아이를 안아준다. 딱 그만했을 때의 나를 안아준다.


나는 속병을 자주 앓았다. 기억하는 가장 어린 내가 화장실 바닥에 누워있다. 황갈색 타일 바닥이 차가워 몸에 닭살이 인다. 일어나 앉고 싶지만 몸을 가누기 어렵다. 더 이상 게워낼 게 없어 방으로 들어가 누우면 금세 입안으로 침이 고여든다. 변기 앞에 쭈그려 앉아 온몸에 힘을 주면 덩달아 설사가 주르르 흘렀다. 똥물이 흥건한 팬티를 벗어 차가운 물에 헹구고 바가지에 담가 놓는다. 그렇게 몇 번을 토하고, 싸고 하다 보면 날이 밝아온다. 엄마가 일어나기 전 방으로 들어가 애써 눈을 감는다. 자고 일어나면 씻은 듯 배가 나았다는 거짓말은 그 시절 밤새 추위와 고통으로 몸서리치던 작고 어린 나에게 뒤늦게 어루만져 주고 싶은 엄마 손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두 시간 간격으로 일어나 구토를 했다. 꾸덕꾸덕한 토사물이 샛노란 위액이 되어 물처럼 흘러내릴 때까지 모조리 게워낸 아이는 이른 아침이 되어서야 깊은 잠이 들었다. 어질러진 방안을 정리하고 나도 누웠다. 커튼 새로 아침 빛이 들어찬다. 자고 일어나면 늘 그랬듯 깨끗이 나아 있을 것이다. 이미 그 밤은 모두 지나갔으므로.


잇글3기 8주 '연결 / 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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