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

by 승현



내 이름은 승현 도슨트죠.


어떻게 운을 띄울까 며칠을 고민하다 내가 아는 초등학생 중 가장 유명한 코난의 소개를 빌려봤다. 나는 2023년 4월 광주 비엔날레에서 첫 해설을 한 전시 해설사다. 현재는 광주시립미술관에서 해설을 하고 있고, 올 해엔 광주의 문화유산이자 동방 제일의 누각인 희경루를 해설했다. 항상 귀하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묻는 말에 무직을 체크하곤 했는데, 이젠 프리랜서로 소개가 가능하다. 도슨트란 단어는 사실 낯간지럽다. 꼭 마치 연애프로그램에 우스꽝스러운 장면으로 나오는, 직업이 뭐냐 물을 때 내 직업을 엄청 올려치기 하여 자랑하는 것만 같다. 또래 친구들을 새로 만날 때마다, 무슨 직업을 가지고 밥을 먹고 사냐라는 질문에는 음.. 운 좀 띄우다 긴 고민 끝에 얘기한다. 전시 해설사야. 실제로 도슨트란 단어보다 전시 해설사란 단어를 더 좋아한다.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우며 상상하기 좋은 단어지 않은가.


내가 도슨트가 된 계기는 좀 웃기다. 비엔날레 재단에서 그동안의 전시 아카이브를 정리하는 일용근로를 하고 있을 때였다. 눈이 펑펑 와서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며 출근을 했던 기억이 난다. 꽁꽁 언 손을 조금 녹이고 작업을 시작하려고 할 때, 컴퓨터가 먹통이 되어 자릴 옮겨야만 했다. 때 마침 옮긴 자리가 도슨트 관리자 선생님 옆 자리였고, 그날은 미달이 난 도슨트를 추가 모집했던 마감 날이었으며, 2자리가 공석이고 마감 시간이 10분도 채 남지 않아 관리자 선생님이 말 그대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주변에 도슨트 할 만한 사람 없어요?" 애타게 묻는 질문에 주변 선생님들이 파티션 너머로 나를 쳐다봤다. (이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승현쌤, 4월 달에 뭐 해? 어, 아무것도 없는데요....라고 기어들어가듯이 대답하자 파티션으로 기어들어가는 나를 관리자 선생님이 쑥 잡아끌어올렸다.




그럼 도슨트 할래? 말 얼마 안 해도 돼!




이 멘트는 그 당시 괜스레 달콤하게 들렸지만 뒤늦게 생각하면 명백한 취업사기 멘트다. 아무튼 그 말은 도전하기 좋아하는 나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고민 시간이 2분도 채 넘어가지 않았고, 마감 5분 전엔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1분 남은 즈음엔 관리자 선생님의 메일 주소로 이력서를 송부했다. 도슨트의 스펠링도 모르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내가 말을 정말 많이 해야 하고 암기할 것도 굉장히 많은 해설사의 세계로 입문하게 된 순간이었다.




전시 해설 2년 차, 가지고 있는 사원증이 많아졌다. 디자인 비엔날레 해설할 때, 마무리로 항상 하던 말이 있다. 그 당시 우연히 마주쳤던 문장을 인용해서.


제가 요새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헤맨 만큼 내 땅이 된단 말이에요. 사실 비엔날레는 어렵다는 평이 항상 뒤따르는데, 여러분들은 저를 가이드로 두고 한 시간을 저와 함께 열심히 이 전시장을 헤맸고 땅이 넓어졌습니다. 여러분들이 넓힌 땅 위에 여러분들의 취향대로 디자인하는 삶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마무리였다.

가끔 메모를 해가거나 감명받은 표정을 하는 관객의 얼굴을 마주할 때면 그게 큰 기쁨으로 돌아온다.



사실 올 한 해 해설사로서 심적으로 많이 헤맸던 시기였는데, 좋은 기회가 끊임없이 찾아와 내 땅이 굉장히 넓어졌다.



그렇게 넓어진 땅에 차곡차곡 쌓아가는 나의 전시 이야기와, 만난 관객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더 넓어질 내 땅 이야기를 해보고자 이 브런치의 첫 글을 발행해 본다. 어때요, 저와 같이 걸어 다니며 땅 한 번 넓혀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