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금향 하우스 견학기
서귀포의 겨울은 감귤 수확으로 부산하다.
그것은 급하게 서두르지 않는 어수선한 것이 아니라 정돈되어 있고 일사불란함이 느껴지는 부산함이다.
귤밭마다 수확을 마친 과실은 상자 채로 트럭에 실려 선과장이나 작목반으로 옮겨진다.
이맘때면 컨베이어 시스템이 밤낮없이 돌아가고, 택배회사의 일손도 바빠진다. 덩달아 주변 식당들도 호황을 누린다.
얼마 전 이웃 삼춘을 따라 황금향하우스를 둘러보았다.
동네 산책을 하면서 하우스 안에 주렁주렁 매달린 과실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햇살 가득한 내부에 들어서니 고랑고랑 사이로 갓 수확한 황금향 과실이 가득하다.
파치(‘깨어지거나 흠이 나서 상품성이 없는 과실’을 이르는 말)라고 해도 내가 보기에는 상품, 하품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멀쩡하다.
노란 콘테나에 가득 황금향을 담아 왔다. 맛을 보니 과즙이 풍부하고 부드러운 단맛이 입안을 감싸고돈다.
황금향은 제주에서도 귀한 편이다. 껍질이 얇아 잘 벗겨지지 않고 물러 터지기 쉬워 유통과정이 까다롭지만 최고의 맛을 선사한다.
며칠 뒤 우리 부부는 염치를 무릅쓰고 육지 부모님께 보내고 싶다고 어르신께 연락을 드렸다.
어르신은 흔쾌히 짬을 내어 농장 문을 열어주셨다. 좋은 것은 다 팔고 남은 것이니 맘껏 가져가라 하신다.
쇼핑백 몇 개를 들고 나타난 우리에게 무슨 사람이 그렇게 욕심이 없냐고 하시며 담아갈 나무 박스를 몇 개 더 주신다.
죄송스러운 마음에 하우스 내부의 여러 가지 물품들을 정리해 드리고 약간의 일손을 거들었다. 작은 허드렛일조차 대부분 허리를 굽히고 하는 일이라 고역이다. 어르신은 과실이 상할 수 있으니 물로 세척하지 말고 천으로 살짝 닦아서 박스 포장을 하라고 당부하셨다.
나는 거저 가져갈 수는 없으니, 식사 한 끼 대접하고 싶다고 했지만 어르신은 감사하다는 말로 충분하다고 끝내 사양하셨다.
제주섬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오신 어르신들은 남다른 점이 있는 것 같다.
평생 귤 농사를 지으신 고된 삶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감동이지만, 대화를 나누면서 마음으로 전해오는 감동이 더 크다.
어르신은 혹시라도 우리가 공짜로 얻어가는 데 부담을 가질까 봐 그것이 더 신경이 쓰이셨을 터이다. 그러니 무슨 대가를 바라시기라도 할까.
내가 이런 이웃을 만나 삶의 한 부분을 채워갈 수 있다니 감사할 뿐이다.
* 지금은 노지 감귤 수확이 대부분 끝나고, 한라봉이나 천혜향 같은 만감류(늦게 수확하는 품종)를 수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