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쓴다는 것

행복한 시 읽기(6) 노천명의 시

by 박현

노천명이라는 시인이 있었다.

삶의 한가운데를 바라보며 '결사적으로' 시를 써내려 갔던 그녀가 잊혀 간다. 그녀의 모든 시를 읽기 전까지 시인의 삶을 통째로 이해할 수 없었다. 늘 자신을 바라봤던 시에 비하면 그녀의 삶은 너무 무겁다.




노천명은 자신을 응시하며 '나 자신'을 써내려 간 시인이다.

그녀의 시 「사슴」 은 사슴이라는 대상을 시인 자신의 모습에 투영한 시다. 「자화상」 이라는 또 다른 제목의 시에서는 그녀가 비겁하고 유연하지 못하게 처신하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괴로워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왠지 「사슴」 에서 ‘관이 향기로운 너'와 ’ 물속의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먼 데 산을 쳐다보는 (너)‘ 가 동일한 대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시인의 두 가지 얼굴일 수도 있고, 한 얼굴의 서로 다른 표정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시 속에 시인의 얼굴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자존감을 지켰던 시인에게 세상의 루머에 흔들리던 감추고 싶었던 삶이 같이 존재하는 것이다. 삶은 중의적이라는 것을.


그녀가 말년에 쓴 '감사'라는 제목의 시에서 나는 시인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난다.

그녀의 시가 그렇듯이 이 시에서도 화자는 시인 자신이다. 그녀는 홀로 세 들어 살던 서대문의 어느 언덕길을 산책하며 '베로니카'(노천명의 세례명)가 되어 잠시동안 자유함을 느꼈을 것이다. '저 푸른 하늘과/ 태양을 볼 수 있고/ 대기를 마시며/ 내가 자유롭게 산보할 수 있는 한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 이것만으로 나는 신에게 감사할 수 있다'('감사' 전문).

세상의 비아냥거림 속에서도 언제나 자신의 속 모습을 그렸던 시인 덕분에 우리는 가끔씩 찾아오는 또 다른 나를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삶이 녹녹지 않음을 알고 살아가지 않는가.




자신의 모습을 수없이 그린 화가 고흐는 자신을 그리는 것을 자기 고백이라고 했다.

친일과 부역이라는 두 가지는 그녀를 '높은 족속' 에서 '슬픈 짐승'으로 끌어내렸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감추고 싶었던 친일시와 이념시가 부각되기 시작했고, 「사슴」이 연애시로 둔갑되기도 했다. 그녀의 아름다운 시들이 잊혀 가는 게 안타깝기만 하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쳐다본다


- 노천명의 '사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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