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뿐인 인생

행복한 시 읽기(15) 쉼보르스카의 시

by 박현

쉼보르스카(1923­~2012)는 폴란드의 시인으로 1996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발간된 시선집 『끝과 시작』 덕분에 나는 그녀의 시를 읽으며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 있었다. 수록된 모든 시들은 하나같이 철학적이면서 소박하고 정갈해서 깊은 울림을 준다.




쉼보르스카의 시 「첫눈에 반한 사랑」 은 우연에 대해 쓴 시다.

시인은 사랑의 확신으로 가득 찬 연인에게 묻는다. 과거에 두 사람에게 수많은 우연이 스치고 지나가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운명이라고 부르는 사랑은 '수 만 번 서로 스쳐지나갔을 인연'과 '두 사람이 알아차리지 못했을 암시'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답한다.


'우연'이라는 말은 뜻 밖에 일어난 일이다. 우연이라는 어떤 힘이 두 사람 사이를 붙였다 떨어뜨려 놓기도 하고, 길을 막기도 하고 돌아가게도 한다. 그렇지만 우연은 운명이 될 때까지 두 사람 옆에 늘 붙어 있다. 쉼보르스카는 우연 예찬을 통해 삶과 사랑이 이루어지는 메커니즘을 밝히고, 그것이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거나 아주 작은 확률의 가능성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쉼보르스카의 우연 예찬은 한 번뿐인 인생에서 순간을 포착하는 삶의 태도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시인은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그녀의 시 「두 번은 없다」중에서 인용)는 것을 전제로 '단 일 분이면 충분할 순간의 눈물을 지나쳐버리진 않았는지? 다른 이의 소중한 노력을 하찮게 여긴 적은 없었는지?'(그녀의 시 「나에게 던진 질문」중에서 인용) 묻는다.




쉼보르스카의 시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삶이란 만약이라는 가정으로 시작해 수많은 변수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의 연속일지 모른다. 우리가 마주치는 모든 것들이 수학적으로 낮은 확률속에서 일어난다면, 또, 삶이 수많은 우연이 쌓인 결과라면 우리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그들은 둘 다 믿고 있다.

갑작스런 열정이 자신들을 묶어 주었다고

그런 확신은 아름답다.

하지만 약간의 의심은 더 아름답다.


그들은 확신한다.

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기에

그들 사이에 아무런 일도 없었다고.

그러나 거리에서, 계단에서, 복도에서 들었던 말들은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수만 번 서로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로 기억하지 못하는가.

어느 회전문에서

얼굴을 마주쳤던 순간을.

군중 속에서 '미안합니다' 하고 중얼거렸던 소리를.

수화기 속에서 들리던 '전화 잘못 거셨는데요' 하는 무뚝뚝한 음성을.

나는 대답을 알고 있으니,

그들은 정녕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놀라게 되리라.

우연이 그토록 여러 해 동안이나

그들을 데리고 장난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면.

그들의 만남이 운명이 되기에는

아직 준비를 갖추지 못해

우연은 그들을 가까이 끌어당기기도 하고, 떨어뜨리기도 했다.

그들의 길을 가로막기도 하고

웃음을 참으며

훨씬 더 멀어지게도 만들었다.


비록 두 사람이 읽지는 못했으나

수많은 암시와 신호가 있었다.

아마도 3년 전,

또는 바로 지난 화요일,

나뭇잎 하나 펄럭이며

한 사람의 어깨에서 또 한 사람의 어깨로 떨어지지 않았던가.

한 사람이 잃어버린 것을 다른 사람이 주웠었다.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그것이

유년 시절의 덤불 속으로 사라졌던 공일지도.


문 손잡이와 초인종 위

한 사람이 방금 스쳐간 자리를

다른 사람이 스쳐가기도 했다.

맡겨 놓은 여행 가방이 나란히 서 있기도 했다.

어느 날 밤, 어쩌면, 같은 꿈을 꾸다가

망각 속에 깨어났을지도 모른다.


모든 시작은

결국에는 다만 계속일 뿐.

운명의 책은

언제나 중간에서부터 펼쳐지는 것을.


- 쉼보르스카의 시 「첫눈에 반한 사랑」전문 인용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 쉼보르스카의 시「두번은 없다」1, 3연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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