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꽃 피는 무화과

행복한 시 읽기(16) 김지하의 시

by 박현

김지하 시인(1941-2022)은 많은 시를 썼다.

「오적」이라는 풍자시도 썼고,「타는 목마름으로」같은 저항시도 썼고, 「애린」이라는 장시도 썼다. 그렇지만, 다양한 활동 이력으로 그를 시인이라기보다는 사상가라고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시「무화과」를 읽어보자.

이 시는 두 친구가 술에 취해 도랑을 따라 걷다가 주고받는 말이다. 시의 화자는 내겐 꽃 시절이 없었다며 자조한다. 친구는 속 꽃 피는 무화과나무를 쳐다보며 삶은 꽃처럼 피지 않아도 괜찮다고 한다. 두 친구의 대화는 얼핏 보아 무화과의 비유를 통해 삶을 위로하는 듯 보이지만, 두 친구의 서로 다른 세계관을 암시하기도 한다. 무화과에 대해 한 친구는 꽃이 피지 않고 바로 열매 맺는다고 한다. 또 다른 친구는 열매 속에서 꽃이 핀다고 한다. 무화과는 잎이 무성한 나무다. 넓게 갈라진 잎사귀가 푸른 가지를 덮고 그 속에 열매를 감추고 있다. 그리고 그 열매의 껍질 속에서 붉은 꽃이 핀다.


그의 다른 시「초파일 밤」은 시인이 수감 생활 중에 쓴 시다.

시의 화자는 교도소 벽돌담 너머 인왕산 기슭에 켜진 연등을 바라본다. 그리고 "꽃 같네요/ 꽃밭 같네요"라고 이야기하면서 그곳에 가고 싶다는 열망을 나타낸다. "갈 수 있을까요/ 언젠가는 저기 저 꽃밭"에서 시인은 오색영롱한 꽃밭 같은 연등을 사형수였던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살아서는 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어서 "꽃구경 할 수 있을까요"라고 죽음에 대한 실존에 다다른다. 한 인간의 끝없는 절망이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나는 시를 쓰는 일이 속 꽃 피는 무화과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꽃과 열매가 하나인 무화과와 같이 껍질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이 시를 읽는 일이다. 김지하의 시를 읽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나는 그가 서정성이라는 투명한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하는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돌담 기대 친구 손 붙들고

토한 뒤 눈물 닦고 코 풀고 나서

우러른 잿빛 하늘

무화과 한 그루가 그마저 가려 섰다.


이봐

내겐 꽃 시절이 없었어

꽃 없이 바로 열매 맺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친구는 손 뽑아 등 다스려 주며

이것 봐

열매 속에서 속 꽃 피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일어나 둘이서 검은 개굴창가 따라

비틀거리며 걷는다.

검은 도둑괭이 하나가 날쌔게

개굴창을 가로지른다.


- 김지하의 시 「무화과」 전문 인용



꽃 같네요

꽃밭 같네요

물기 어린 눈에는 이승 같질 않네요

갈 수 있을까요

언젠가는 저기 저 꽃밭

살아 못 간다면 살아 못 간다면

황천길에만은 꽃구경 할 수 있을까요

삼도천을 건너면 저기에 이를까요

벽돌담 너머는 사월 초파일

인왕산 밤 연등, 연등, 연등

오색영롱한 꽃밭을 두고

돌아섭니다.


- 김지하의 시「초파일 밤」 전반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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