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시 읽기(20) 김광협의 시
제주살이를 시작하면서 김광협 시인(1941-1993)을 알게 되었다.
제주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을 꼽는다면 김광협 시인이 아닐까 싶다. 서귀포에서 태어나 고향 마을을 그리워하며 남긴 그의 시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천지연폭포 입구에 가면 시비가 하나 있다.
김광협 시인의「유자꽃 피는 마을」이라는 제목의 시다. 이 시에는 서귀포 바다와 함께 유자꽃(제주 토종 유자인 '댕유자'를 말함) 피던 마을의 소년 시절 그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 시인의 고향 마을인 호근동 마을회관 앞에는「수선화」 시비가 있다. 이 시에서는 "눈 내리는 밤에만 눈 뜨는 수선화/ 수선화 포기마다 하이얗게/ 눈같이 하이얗게 수선화가 핍니다"라고 노래하고 있다.
얼마 전 동문로터리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김광협의 시를 만났다.
시비에 새겨진 시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몇 번을 읽고 나니 '돌하르방'이 친근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시인은 제주어로 이야기하듯 쓴 시를 모아 1984년에『돌하르방 어디 감수광』이라는 제목의 시집을 펴냈다. 제주어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소멸 위기 언어로 보존 가치가 시급하다. 제주 향토 문학을 접하면서 제주의 역사, 민속, 언어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자고 다짐하게 된다.
칠십리시공원에 가면 서귀포를 소재로 한 시비들을 볼 수 있다.
김광협 시인을 비롯해서 한기팔, 김용길 등 향토 시인들의 시와 정지용의 시도 볼 수 있다. 공원마다 골목마다 담벼락에도 입간판에도 곳곳에서 서귀포의 자연과 사람을 사랑하는 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서귀포라는 작은 도시에 이렇게 많은 시비가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광화문 교보빌딩에 걸린 시를 보고 사람들은 공감한다.
출퇴근길에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어쩌다 한 구절의 시를 만나게 되면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이제 서귀포에서 서귀포를 노래한 시, 서귀포를 사랑한 시인들을 만난다.
내 소년의 마을엔
유자꽃이 하이얗게 피더이다.
유자꽃 꽃잎 사이로
파아란 바다가 촐랑이고,
바다 위론 똑딱선이 미끄러지더이다.
툇마루 위에 유자꽃 꽃잎인 듯
백발을 인 조모님은 조을고
내 소년도 오롯 잠이 들면,
보오보오 연락선의 노래조차도
갈매기들의 나래에 묻어
이 마을에 오더이다.
보오보오 연락선이 한 소절 울 때마다
떨어지는 유자꽃.
유자꽃 꽃잎이 울고만 싶더이다.
유자꽃 꽃잎이 섦기만 하더이다.
- 김광협의 시 「유자꽃 피는 마을」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