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의 여름(1)
서귀포의 여름은 장마로부터 시작된다.
육지보다 먼저 시작되는 비는 바람을 만나 폭우가 되기도 한다.
밤이나 새벽에는 세차게 소나기가 퍼붓기도 하지만,
아침이 되면 평온하기를 반복한다.
어디 여름의 시작이 지루한 장마뿐인가?
바닷가에는 순비기 꽃이 보랏빛으로 뻗어가고,
주황빛 능소화는 마을 돌담을 타고 올라 장마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감귤밭에는 아가 주먹만 한 풋귤이 단단하게 익어간다.
바다는 아침마다 두꺼운 안개의 띠를 두른다.
후텁지근한 공기가 남풍에 밀려 아직은 차가운 바다와 부딪혀 작은 물방울을 만든다.
무거워진 물방울들이 서로를 붙잡고 바다에 납작 엎드린다. 이때 섶섬은 바다 위에 떠 있는 것 같다.
안개는 천천히 물에서 뭍으로 올라와 한라산 자락까지만 머물다 갈 것이다.
서귀포 해안은 거대한 수증기에 휩싸여 펄펄 끓고 있는 것 같다.
중산간에서 내려다보면 푸르던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허물어진 모습이다.
한라산 자락에 부딪힌 구름 덩어리는 그 작은 물방울들을 데리고 떠날 채비를 하는 듯하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고 있다.
서귀포의 여름은 두 개의 계절이 공존한다.
여름은 시작부터 끈끈하다. 또 다른 시작을 위해 장마가 끝날 때까지 끈적거리는 날씨를 견뎌야 한다.
장마전선이 북상하면서 아침마다 바다 위에 머물던 안개 군단마저 떠나면 드디어 여름이다.
바닷물이 따뜻해지고 본격적인 물놀이가 시작되는 것이다.
서귀포의 밤은 붉은빛에서 푸른빛으로 바뀌어 간다.
하지를 지나 기울어진 해는 고근산 너머로 진다. 붉은 노을은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은 순간이다.
푸른 이내의 순간이 지나고 밤이 되면 서귀포 바다는 수평선 가득 불빛으로 채워진다.
갈치 잡이 선단의 집어등은 어느 불빛보다도 환하고 강렬하다.
한 여름을 내내 보내고 그 여름의 끝에서 백일홍이 피고 또 진다.
붉게 핀 꽃 사이로 꽃이 떨어진 자리에 꽃받침만 남고 노란 수술이 꽃처럼 예쁘다.
그리고 꽃망울이 둥근 열매처럼 맺어 있다. 꽃망울이 무르지 않아 꽃잎으로 펼쳐지기가 더딜 것이다.
그 여름의 끝은 어디일까? 과연 가을이 오기나 할 것인지.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 차례 폭풍에도 그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 이성복의 시 「그 여름의 끝」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