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행(4)
벵디는 한라산, 오름, 곶자왈과 함께 제주 여행의 네 번째 테마이다.
남북으로 종단하는 도로를 지나다 보면 한라산 아래 드넓은 평원을 만나게 된다. 제주에도 어쩌면 황무지 같은 고원지대가 존재하는 것이다. 벵디에서 여행자는 중산간의 평화를 느낀다.
벵디는 오름과 오름 사이에 넓고 평평한 들판이다.
'벵디'('벵듸'라고도 한다)는 평평하고 넓은 들판을 말하는 제주어다.
제주 중산간 지역은 방목지가 대부분인데 오름과 오름 사이 군데군데 목초지가 숨어 있다. 중산간을 걷다 보면 흰색의 콘포사일리지로 가공된 목초 더미를 볼 수 있는데, 이는 겨울부터 봄까지 마소의 비축 식량이 된다.
조선시대 제주의 목장은 국영목장인 10소장을 중심으로 발달했다고 한다.
여기에 민관합동의 산마장과 사목장의 형태를 거쳐 이후 마을 공동목장으로 변화하였는데, 이 마저도 점점 사라지고 1970년대 이후에는 기업형 목장이 들어섰다.
중산간 마을 가시리와 의귀리에서 벵디를 만나다.
한라산 둘레길을 탐방하다 보면 '잣성'('잣담'이라고도 한다)을 볼 수 있다.
'잣성'은 목장 경계용 돌담을 말한다. 현재는 나무가 빽빽하게 자라 그곳이 목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기 어렵지만 돌담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한라산 자락을 지나는 지나는 산록도로 위쪽은 눈이 녹기 시작하면서 넓은 초지로 바뀌고 최적의 방목지가 되는 것이다.
제주 목축 문화를 대표하는 중산간 마을은 표선 가시리와 남원 의귀리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개의 중산간 마을 사이에 많은 목장이 지금도 존재한다. 가시리는 제주마를 길렀던 산마장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녹산장과 최고 등급의 말을 사육했던 갑마장이 설치될 만큼 제주 목축 문화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헌마공신 김만일의 고향이기도 한 의귀리는 제주마의 본향이자 제주 목축 문화의 1번지라고 할 만하다.
유채꽃 핀 녹산로를 따라 대록산 아래 드넓은 벵디의 품에 안기다.
지금은 유채꽃길로 유명해진 녹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벵디를 볼 수 있다.
이곳에는 가시리 마을에서 조성한 유채꽃플라자와 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서 있고, 안쪽으로는 과거 녹산장이었던 제동목장이 자리 잡고 있다.
제주마 방목지(5.16도로)와 한국마사회 제주목장(남조로)에 가면 제주마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수십만 평에서 백만 평에 이르는 넓은 땅이 대부분 기업 소유의 목장으로 자리하고 있어 출입이 제한된 곳이 많다.
과거에 올레길을 걷다가 신천목장(성산읍 신천리 소재)을 지난 적이 있다.
바닷가에 인접한 목장으로 겨울이 되면 넓은 들판 위에 귤껍질을 펼쳐 말리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최근 뉴스에서 신천목장과 신풍목장이 개발사업자에게 매각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다고 하나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