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효마을

제주살이 시작(4)

by 박현

보목마을에서 여름을 나고 신효마을로 이사했다.

마을을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침마다 걸었던 섶섬 앞 구두미포구가 눈앞을 막았다. 날마다 들여다보던 마당에 나무와 꽃들, 작은 텃밭도 눈에 밟혔다. 그렇게 다시 돌아오리라는 다짐 아닌 다짐을 했다.




신효마을은 일주도로를 사이에 두고 보목마을과 마주하고 있다.

보목마을에서 마소물로를 따라 위쪽으로 올라가면 일주도로와 만나고 초입에 신효마을 표지석을 볼 수 있다. 신효마을의 행정동은 효돈동인데 하효와 함께 효돈이라고 불리던 것에서 이름 붙인 것 같다. 효돈은 과거 '쇠둔'('쉐둔'이라고도 한다)이라고 불렸다. 문헌을 찾아보니 '소떼를 방목하던 곳'이라는 뜻이다. 해발 100m의 월라봉 아래 평평하고 넓은 땅이 펼쳐져 있으니 소 방목지로는 최적의 장소였을 것 같다. 효돈천을 따라 소떼들이 몰려가는 풍광을 상상해 보니 신효마을의 옛 정경이 그대로 그려진다.


지리적으로 신효마을은 월라봉 아래 위치하고 효돈천을 끼고 있다.

월라봉은 달빛이 동쪽 봉우리를 비춘다고 해서 '다라미'라고 불렸는데, 서쪽으로는 포제동산이 있어 마을 제사를 지낸다.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애기업개돌과 구덕찬돌에 서린 이야기가 있고 서국바위도 웅장하게 서 있다. 효돈천은 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자연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한라산 정상 부근에서 발원한 수십 갈래의 하천 중에서 효돈천은 남대소, 칼바위 등 용암이 흘러내린 흔적을 가장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쇠소깍은 효돈천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이다.


신효마을은 감귤의 본고장이다.

조선시대 왕실 진상을 위해 감귤을 재배했던 감귤원이 있던 대표적인 곳이고, 효돈감귤이라는 브랜드로 제주도 감귤 재배의 선도적 역할을 해 온 마을이다. 월라봉 근처에는 마을공동체에서 운영하는 대형 감귤선과장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수십 만상자의 감귤이 전국 각지로 출하된다고 한다. 감귤 재배로 신효마을은 전국적으로도 가장 높은 농가소득을 올릴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 때문인지 월라봉 아래 언덕에는 감귤박물관이 자리 잡았다. 감귤박물관 앞에는 '소원나무'라는 애칭이 붙은 최고령 하귤나무를 볼 수 있다.




신효마을로 이사한 지 한 달이 지나고 있다.

아침마다 새소리에 눈을 떠서 마당에 나오면 붉은 해의 기운이 가득하다.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일출을 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해가 누리를 비추면 오밀조밀 모여있는 집들 사이 귤밭에는 주황색 귤빛이 가득하고, 지귀도가 보이는 먼바다의 수평선 아래 마을 전체가 보석처럼 빛나기 시작한다.

작가의 이전글중산간의 평화, 벵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