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효 마을길 산책

제주살이 시작(5)

by 박현

내가 사는 곳은 신효마을 웃동네이다.

월라봉이 가까이 있고 온통 귤밭으로 둘러 쌓여 있다. 중산간 마을로 이어지는 길목이라 마을 안쪽보다는 한적한 편이다.


오후 햇살이 기울어지면 나는 동네 산책을 시작한다.

이곳은 길가에 하귤나무가 많은데 둥근 과실의 빛이 아직 푸르다.

신효마을과 하효마을 잇는 길 '효돈로'로 들어선다. 오래된 왕벚나무의 초록색 잎이 노랗게 물들었다가 붉게 물들어가고 있다.

봄이면 이 거리의 왕벚나무에서 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서귀포 지역에서도 가장 먼저 핀다.

마을회관이 보이는 마을 한가운데까지 왔다. 동백나무 한 그루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마을길을 걷다 보면 버스정류소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어르신들을 만난다.

그 시선이 햇살처럼 따뜻하게 느껴진다. 내가 어린아이가 되는 느낌이다.

신효마을은 제법 규모가 커서 간선버스도 자주 다니고 서귀포 시내로 통학하는 고등학생들도 많다.

효돈초등학교 주변으로는 아이들을 데리고 제주로 이주해서 사는 젊은 부부들도 보인다.


초등학교 위로 올레를 따라가다 보면 효돈성당이 소박하게 서 있다.

매일 여섯 시 하루에 두 번 종소리가 마을 전체에 울려 퍼진다. 투박하고 은은한 소리는 마을 사람들을 닮았다.

신효마을이 좋은 것은 공동도서관과 작은 책방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그곳에 간다.

도서관 향토자료실에서 이런저런 문헌들을 뒤적거리다가 '책 너머 바다'라고 이름 붙인 작은 공간에서 제주 공부도 하고 쓰는 일도 한다.


가까이 바다를 보고 싶으면 트멍길을 걷는다. 트멍길(‘트멍'은 틈새를 뜻하는 제주어)은 마을 둘레길이다.

쇠소깍에서 해변을 거닐다 하효항을 끼고 게우지코지까지 바당길을 걷기도 하고,

쇠소깍 다리에서 효돈천을 따라 위로 올라가 감귤박물관이 위치한 월라봉까지 걷는다.

요즘은 소금막 검은모래해변에서 신발을 벗어두고 맨발 걷기를 한다.

맨발로 걸으면 모래가 바닷물에 젖는 느낌을 알 수 있고 저절로 느리게 걷게 된다.




이웃 삼춘께 신효마을에 대해 물어보면 사람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여기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인심이 좋고 후하다고 하는데 마을에 대한 자긍심이 느껴진다.

경주 김씨 집성촌이 만들어진 이야기부터 선비의 고장답게 행동거지가 바르다는 것이다.

대부분 감귤 재배를 하는 덕분에 한때 부자 마을로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물론 바람이 적고 온화한 기후도 빼놓지 않는다.


이곳에 와서 월라봉이 '다라미'라고 불렸는지 알게 됐다.

성산의 오조마을이 일출봉에 떠오른 해가 비추는 마을이라면, 신효마을은 달빛이 처음으로 비추는 곳이다.

아직도 내가 서귀포에 살고 있다는 것이 꿈을 꾸는 듯하다.

달빛이 비추는 곳에서 꿈을 꿀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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