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딱 좋은게 마씀

제주의 가을(1)

by 박현

'산이영 바당이영 몬딱 좋은게 마씀'

이 말은 '산이랑 바다랑 모두가 좋다'라는 제주어 문장인데, 제주의 가을 두고 하는 말 같다.


가을은 바람과 함께 살며시 찾아온다.

여름 내내 무겁게 내려앉던 물방울들이 사라지고 바람은 한결 시원해진다.

하늘은 높아지고, 땅은 축축함을 덜어내 보슬보슬해진다. 하늘과 땅 사이는 신선한 공기방울들로 채워져 부풀어 오를 것만 같다.

구름은 밀도가 옅어져 솜처럼 가벼워진다.

햇살은 열기가 식어 아직 남아있는 온기를 살아있는 것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준다.


제주섬은 서두르지 않고 다채로운 색감으로 바뀌어간다.

비탈진 곳이나 움푹 파인 곳이나 귤밭은 노란빛이 점점 더 짙어진다. 돌담 너머 귤향이 공기 사이로 스며든다.

붉은빛 단풍은 한라산 자락부터 실핏줄 같은 계곡까지 물들여 간다.

황금빛 억새가 오름과 들판을 뒤덮을 때 가을은 내 품 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가을빛은 제주 바당에도 물결처럼 밀려온다.

물때에 따라 밀려오는 강도가 세지기도 하지만 물빛이 투명해진다. 물이 빠지고 나면 바다는 잔잔하고 은은하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뚜렷해지고, 두 개로 나눠진 푸른 면은 매끄럽다.

문득 직선도 아름답다는 것을 수평선은 알게 해 준다.




제주 사람들은 유난히도 가을을 좋아한다.

여름의 열기가 가시고 찾아오는 계절에는 분명 시간의 너그러움이 있다.

가을은 오롯이 제주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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