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가을(2)
서귀포 시내에서 한라산을 바라보면 솔오름 너머 붉은빛이 완연하다.
청명한 대기 덕분인지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구름이 남벽을 휘감기도 하지만 이내 흘러가고 웅장한 자태를 보여준다.
한라산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지만 가을엔 그 품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진다.
단풍철에 한라산 영실은 가을 산행으로 붐빈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집을 나선다.
간단한 간식과 물을 챙겨 배낭에 넣고 1100 도로를 올라간다. 등산로 입구에서 영실계곡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병풍바위가 보이기 시작하고, 전망대에서는 범섬부터 산방산까지 훤히 보인다. 산은 군데군데 단풍이 벌써 지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느지막이 물들어 가고 있다.
곳곳에 참빗살나무의 붉은 열매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고사목은 흰빛으로 굳어져 석고상 같기도 하다. 구상나무 숲을 지나 선작지왓에 올라서서 작은 돌멩이들과 곱게 물들어가는 너른왓을 바라본다. 윗세오름 사이로 주름진 정상 화구벽에도 깊어가는 가을의 흔적이 보인다.
천아계곡은 수많은 단풍나무가 용암이 굳어진 돌덩이 위로 펼쳐져 있어 한라산 가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한라산 자락의 둘레길을 걸으면 발걸음이 더할수록 가을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한라산의 단풍은 상록수와 낙엽수가 뒤섞여 짙은 녹색 위에 붉은빛과 노란빛이 층층이 내려앉는다. 눈앞에 펼쳐지는 색의 조화가 놀랍기만 하다. 햇살이 비치면 나뭇잎 하나하나가 투명하게 빛나 마치 산 전체가 숨을 쉬는 듯하다.
가을 제주는 억새의 물결이다. 가까이서 제주의 가을을 느끼고 싶으면 들판으로 가라.
가을이 깊어 가면서 바다는 푸른빛으로 들판은 은빛으로 물결을 이룬다. 억새는 여름에 억센 힘으로 뻗어가더니 군락을 이뤄 바람에 무리를 지어 흔들린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흔들림을 추구하는 억새의 본성을 들여다보게 된다.
억새는 여름이 끝날 무렵부터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거칠고 억센 잎은 흰 줄무늬로 나누어지고, 가는 줄기는 곧게 자란다. 줄기 끝에서 붉은빛이 도는 이삭이 올라오고 햇빛을 받아 꽃처럼 희게 팬다. 바람이 불어오면 거친 잎들이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눕는다. 그리고 마침내 이삭들이 햇빛에 부딪히며 은빛 물결을 이룬다.